가고 싶은 곳, 보내시는 곳
[ 논설위원칼럼 ]
작성 : 2022년 11월 21일(월) 08:15 가+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 맘 때가 되면 청빙공고가 넘쳐난다. 전국의 7개 신학교의 졸업반 학우들은 지금 마지막 학기를 마쳐가고 있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은 가고 싶은 곳이 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기 위하여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가고 싶은 곳으로 들어 갔다면 성공의 길로 진입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속에는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이야기 보다는 '보내시는 곳'으로 가는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고 싶었으나 성령은 그를 지금의 유럽지역인 마게도니야로 보내셨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빌립을 가사로 가는 광야길, 사람 없는 길로 보내셨다.

부산장신대의 총장으로 섬기는 가장 큰 기쁨은 이곳 저곳에 흩어져 사역하는 졸업생들을 만나고 격려하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듣는 스토리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었다. 한 졸업생은 졸업 후에 목사가 되고 몇 군데의 청빙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오지에 있는 교회로부터 부름을 받고 설교하러 갔는데 쓰러질 듯한 교회에 나이 많은 할머니만 두명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예배를 끝내고 두말없이 오지 않기로 결정하고 돌아서서 오는데 주님의 감동이 마음에 울려 왔다고 했다. '늙은 할머니 두 명은 내 백성이 아니란 말인가? 이곳이 내가 너를 보내는 곳이다.'

그는 마음을 정하고 30호밖에 살지않는 마을에 세워진 등기도 안된 그 교회에 부임하여 3년을 일했다. 마을 전체보다 더 많은 50명이나 모이는 교회가 되었고 식당과 사택을 새로 짓고 무허가 교회를 등기하며 그 지역에서 존경받는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

또 한 졸업생은 유명한 사찰 앞에 있는 교회로 보냄 받아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환경에서 목회를 하게 됐다. 그의 십수 년의 목회 열매는 스무 명 남짓한 교인들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가 고백한다. "저는 20명을 한 명처럼 목회하고 있습니다. 한 명이나 20명이나 제게는 꼭 같습니다. 한 명 밖에 없어도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더욱 감동적인 고백은 최근에 꽤 규모 있는 교회에서 청빙을 받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고 한다.

주님이 보내신 곳에서 일하는 자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도 덩달아 행복해 졌다. 또 다른 졸업생은 서울에서 규모 있는 교회의 부교역자로 섬기고 있었다. 담임목사로 가고 싶은 곳이 많이 있었지만 주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가겠노라고 기도 했다. 먼저 그를 부르는 곳으로 어디든지 가리라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경남 어느 지역의 교회가 그를 불렀다. 기쁨으로 부임해서 목회를 시작했다. 너무도 행복하고 만족스런 목회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아들이 이렇게 말했단다. "아빠, 실력이 이것밖에 안돼? 대전까지는 봐 줄텐데 경남은 너무 멀어!" 목사아들의 농담이었다.

수도권에서 일하면 성공이고 멀어지면 마치 낙오한 것처럼 여기는 것은 이상한 세상의 셈법이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게 세상의 셈법에 젖어 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위치, 숫자, 규모를 보고 움직이는 것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가야 한다.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이 성공이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은 보내실 곳도 정해 놓으셨다. 내가 아니면 감당하지 못할 고유한 사역을 준비해 놓으셨다. 그 일의 중요성과 가치를 내눈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곳이 주님이 보낸 거룩한 땅임을 깨닫고 나를 보내신 주님의 일을 행하는 기쁨으로 임해야 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말고 주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가라. 신학교때 자주 부르던 찬송을 부르면서.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허원구 총장 / 부산장신대
많이 본 뉴스

뉴스

기획·특집

칼럼·제언

연재

우리교회
가정예배
지면보기

기사 목록

한국기독공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