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우리 부모를 섬겨야 할까?
[ 목양칼럼 ]
작성 : 2021년 05월 05일(수) 08:20 가+가-
예수 그리스도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 또한 섬기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섬김의 한 영역으로 코로나 상황 이전까지 봄/가을학기 노인 대학을 실시했다. 교회에 속한 성도뿐 아니라 지역 사회 어르신들을 함께 초청하여 노래, 율동, 만들기 등을 하고 맛있는 점심 식사와 차를 대접하며, 구청과 기독병원을 연결하여 건강 관련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항상 기뻐하며 밝은 얼굴로 참여하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 가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어르신들이 자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찍어 각 자녀에게 전달해 드렸다. 표현이 서툴렀던 시대의 어르신들이기에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버거워 포기하는 분도 계셨고, '아들, 딸아 사랑한다'고 마음을 다해 고백하는 어르신들도 계셨다. 동영상 메시지에 감동을 받고 울먹이며 연락해 오는 자녀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묵묵히 삶을 살아내신 어르신들이 계시기에 우리 또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헌신과 사랑을 쏟아냈던 그 섬김이 있었기에 자녀들이 장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제 약자가 되어 섬김을 받아야 하는 노인들은 그 섬김에 합당한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시대에 살기에 안타깝다.

우리는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재능, 인격이 고상해서가 아니라 부모의 신분, 부모의 위치, 부모의 역할 때문에 우리가 공경해야 한다. 좋든 싫든 훌륭한 분이든 그렇지 못한 분이든 간에 우리는 부모님을 통해서 세상을 경험했고 지금 나의 신체적인 DNA,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모습들 나의 특성들, 정신세계 심지어는 영적인 세계까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고 성장했다.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부모를 대적하고 거스리는 것은 나의 근원, 나의 출발을 무시하고 부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화되면서 소위 정신적인 세계, 실용주의 철학이 만연하면서부터 이 부모에 대한 섬김의 모습이 점점 무너져 간다.

왜 현대사회에서 효가 이처럼 퇴색되어 가는가? 옛날 농경사회 시절에는 삶의 지혜와 경험을 부모를 통해서 배웠다. 부모가 스승이요 멘토요 모든 일에 자녀보다 우월했다. 그러나 지금은 급변하는 기술사회, 정보사회에서 컴퓨터, 디지털, 인터넷, 웹사이트, 이메일, 코스닥, 나스닥 이 모든 것들을 부모들은 잘 모른다. 부모에게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농경사회때는 부모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았고 삶의 모든 토대와 논밭을 기업으로 물려받았다. 부모야말로 절대적인 의존대상이었다. 부모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년 동안 아버지가 열심히 일을 해서 얻는 수입의 수십 배, 수백 배를 아들이 한 달만에 벌기도 한다. 사회 전체가 바뀌어졌다. 직장을 따라서 분가하고 핵가족제도로 바뀌어 가면서 이제 부모는 자식들에게 점점 귀찮은 존재가 되고 빨리 가셨으면 좋겠다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런 시대, 이런 정신적인 사조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네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라고 말씀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 부모를 섬겨야 할까?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2~25) 부모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 섬김의 자세라고 말씀한다. 지금이 섬길 수 있는 기회이다. 기회가 언제나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상영 목사 / 광주창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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