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작성 : 2021년 04월 16일(금) 11:15 가+가-
누가복음 <2>
누가는 예수님과 관련한 사건들을 황제를 비롯한 당시의 정치권력자들의 시대적 사건들과 연결하여 기술하려는 역사적 관심이 많은 신학자이다. 그럼에도 누가는 구속사 (salvation history)로 알려진 또 하나의 더 큰 우주적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즉 창조주 하나님이 관심과 계획 속에 세상을 다스리시고 운행하신다는 의식이다. 누가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번역되는 블레(boulh,)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데, 그 어휘는 신약성경에 총 열두 번 등장하며 그 중 9번이 누가-사도행전에 집중되어있다(유진 보링, '신약개론', 1027).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실제 인물들이 자신의 시대를 스스로 살아내는 것 같으나, 누가는 누가복음의 군상들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구원사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특히 누가는 많은 등장인물 가운데서도 이 하나님의 구원사를 오롯이 그리고 온전히 주도하여 이끌어 가시는 예수님에 초점을 모은다. 1~2장은 누가복음의 서문과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출생 이야기를 통해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가장 중요한 장을 연다. 이제 1-2장의 주요 단락들을 다루며 그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누가는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기록이 목격자들의 증언과 근거가 확실한 자료들을 기초하였기에 역사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것임을 강조한 후에(1:1~4), 세례 요한의 수태고지로 내러티브를 시작한다(1:5~25). 헤롯 왕 때에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제사장 사가랴와 아내 엘리사벳이 등장한다. 이 부부는 나이가 많았으나 자식이 없었다.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다는 표현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자식 없음이 죄악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며, 이들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미래를 살아갈 소망이 없는 이들을 대표한다. 1세기에는 수천 명에 달했던 24 반열의 제사장들 중 사가랴가 제비뽑기로 제사장의 직무, 특히 성전에서 분향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의 일생의 가장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는 순간에, 천사 가브리엘이 세례 요한의 출생을 예언하지만, 사가랴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나와 내 아내가 늙은 까닭이라고 말하며 합리적이지만 불신앙을 내비친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는 순간에 사가랴의 의심이 깃든 질문은 일종의 표적을 구한 것으로 결국은 아들이 태어나기까지 말을 못하는 징벌적 표적을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진행하신다. 인간의 무지와 불신앙에도 권능을 베푸시고 미약한 인간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각된다.

사가랴도 평범했으나, 하나님은 이제 어떤 유대적 문헌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나사렛 지역의, 그리고 부모의 이름도 가문도 언급되지 않는 한 시골 소녀 마리아에게 다가가시고, 천사를 통해 메시아의 수태고지를 전달하신다(1:26~38). 마리아라는 처녀에게 보내심은 "신적 행동의 목적지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평가는 항상 옳다(D. E. 갈란드, '강해로 푸는 누가복음', 85). 하나님은 배경이 아닌, 사람을 찾으시는 까닭이다. 당시 유대인 소녀의 약혼 나이가 12~13세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어린 소녀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은 오랜 신앙의 연조를 자랑하는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연로하고 제사장이었던 사가랴는 표적을 구했으나, 어린 마리아는 자신의 생각의 가감 없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마리아의 순종은, 말씀을 이리저리 재단하는데는 익숙하나 그 말씀에 온전히 스스로를 맡긴 경험이 가물가물한 우리의 믿음에 경종을 울린다. 마리아는 성령을 힘입어 비천한 자를 돌아보시고, 교만하고 권세 있는 자를 내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1:39~56).

마침내 주의 길을 준비하는 세례 요한과 메시아 예수께서 탄생하신다(1:57~2:7). 예수님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한적한 시골,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집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강보에 싸인 예수님은 동물의 먹이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 인간계의 황제는 호화스러운 황궁에 머물며, 가진 자들만의 평화, 팍스 로마나를 외치며 즐겼지만, 온 세상의 구주는 안락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머리 둘 곳 없는 인자의 삶을 시작하신다. 그러나 그곳은 세상이 알지 못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 시작된 곳이다. 구유는 어느 누구도 메시아의 탄생장소로 예상치 못한 공간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리라고 전혀 예측되지 않는 곳을 상징한다. 누가복음 5장에서도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들의 예상과 달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게 하심으로 깨우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다. '거기에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야!'라고 내가 단정하여 포기하고 무관심했던 나만의 구유와 깊은 곳은 어디인가? 주님은 우리가 오늘 그곳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순종의 그물을 내리길 원하신다.

당시의 목자들은 이방인, 여인들과 함께 법적 증언의 효력이 없다고 여겨지던 무가치한 부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엄청난 사건의 증언자로 목자를 세우셨다(2:8~20). 우리는 사람의 신분, 학식, 직업, 재정 능력에 대한 선입견 속에 그 사람의 말의 신뢰를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내게 무능력하고 무가치해 보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민감히 반응하고 순종할 수 있는가?

한국교회의 최대교회는 '가나안 교회'라는 조소 어린 표현이 있다.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교회에 안 나가는 교인이 100만 명에 달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옷이 아닌 마음을 찢고 통회하는 자성이 필요함과 동시에, 교회의 타락이 우리의 불신앙에 대한 구실이 될 수 없음을 시므온과 안나를 통해 깨닫게 된다(2:21~40). 예수님께서 회초리를 휘두르시며 환전상과 동물을 파는 자를 내쫓으시고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 한탄하실 만큼 당시의 성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타락하였다. 그러나 시므온과 안나는 심히 타락한 성전임에도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메시아를 대망하는 정결한 신앙을 유지하여 마침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목도하고 품에 안는 은혜를 누렸다. 나의 불순종과 흐트러진 신앙을 교회의 타락으로 구실 삼지는 않는가? 어떤 환경에서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정금 같은 신앙을 지켜나가는 믿음의 위인들은 언제든지 존재하였다. 하수같이 흐르는 인간의 탐욕에 지지말고, 정결한 눈물로 씨앗을 뿌려 우리의 생애가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더욱 풍성해지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왕인성 교수 / 부산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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