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읽기 5: 마침내 천국에 이르다
[ 인문학산책 ]
작성 : 2021년 04월 07일(수) 17:55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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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천국 최고천에 서 있는 단테와베아트리체.

'신곡'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천국이다. 지옥은 빛이 없는 곳이고 연옥은 아주 희미한 빛만 비추는 곳이라면 천국은 하나님의 빛으로 충만한 곳이다.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그 분의 영광이 온 누리를 꿰뚫고 빛나는데 어느 곳은 다른 곳보다 더욱 빛나는도다"(천국편 1곡, 1-3)


'만물을 움직이시는 그 분'이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고이다. (2월27일자 '그들에게 신은 무엇인가?' 참조)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여기면서 이를 형이상학에서 다루고 있다. 형이상(形而上)이란 '형체 있는 물(物)을 뛰어넘는'이란 뜻이다. 보이는 세계를 다루는 학문이 '피지카(physica 자연에 대한 학문)'라면 형이상학은 자연을 넘어선, 혹은 그 뒤에 오는 학문이다. 자연학 뒤에 '메타(meta 뒤, 후에, 넘어서)'라는 접두어를 붙여 '메타피지카(metaphysica)'라 명했다. 하나님의 영광과 초월의 신비로 가득 찬 천국은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의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단테가 천국을 상상만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다. 그가 그리는 천국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바탕을 둔 천계의 규칙과 구조를 따르고 있다. 다시 말해 천국의 내용은 신학을 다루는 형이상학이지만 그 천국의 구조는 자연과학의 틀이다. 현대 신학은 천국의 10단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시 프톨레마이오스가 구성한 천구도(天球圖, 자연과학)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신플라톤주의를 수용한 기독교 신학을 통해 단테는 당대 자연과학, 신학, 철학이 응축된 천국을 그려내고 있다.

단테가 그린 천국의 구조


천국의 첫 번째 하늘은 월천(月天), 즉 달의 하늘로 여기서는 달의 자연학과 자유의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 하늘은 수성천(水星天)으로 로마 제국과 신앙을 다루는 내용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의 하늘은 각각 금성천(金星天)과 태양천(太陽天)이다. 태양천부터 지구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네 번째 하늘에서 위대한 중세 신학자인 보나 벤투라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만날 수 있다. 다섯 번째 천은 화성천(火星天)인데 신앙을 위해 죽어간 순교자들의 혼들이 십자가의 형태로 남아있는 하늘이다.


여섯 번째 목성천(木星天)을 거쳐 일곱째 토성천(土星天)에 이르게 되면 더 특별한 하늘이 된다. 목성천까지는 인간사회의 특별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 인간사회에서 정의(justia), 사려깊음(prudentia), 용기(portitudo), 절제(temperantia)에 탁월했던 영혼들을 다룬다면 토성천부터는 사랑이 최고의 덕목이 된다. 일곱 번째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지구가 포함된 지난 여섯 천구를 되돌아 보니 웃음이 나올 정도이다.


"일곱 천구를 두루 돌아다본뒤 저 땅덩이(지구)를 찬찬히 살펴보니 그 보잘것 없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천국편 22곡, 133-135)


토성천은 하늘의 하늘이라고도 할 만큼 신비스럽기에 명실상부한 천국의 입구라고 할 수 있다. 여덟 번째 하늘 항성천(恒星天)에서 신앙의 가장 중요한 덕인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 언급하고 아홉 번째 하늘로 올라간다. 아홉 번째 하늘은 원동천(原動天)이라고 하는데 모든 것을 움직이는 하늘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동의 원동자'라고 말한 신이 위치한 장소이다. 천국편의 마지막 30곡에서는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최고 높은 하늘 최고천(最高天)에 이르게 된다. 천국 여행의 끝으로 순례자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이후 추구해온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이다. 마지막 하늘은 빛과 꽃, 촛불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세계이다. 빛은 천사를, 꽃은 축복받은 인간 영혼의 생명력을, 꺼지지 않는 촛불은 이제 막 구원을 받아들인 인간영혼을 각각 묘사한다. 창조주를 통해 모든 것을 보고 이해하고 포용하게 되는 순간이다.

단테 천국의 구조.


최고천에 이르러 참다운 영원을 접하게 되자 단테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망연자실해 한다. 안정을 되찾고 다시 베아트리체에게 자신이 경험하는 신비로운 천국을 더 알려달라고 돌아본 순간, 베아트리체는 사라지고 한 노인이 대신 서 있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그리워하며 노인에게 '그분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자 이미 자신이 할 일을 다 마치고 천국에서 편히 쉬고 있다고 답한다. 단테는 천국의 마지막 하늘까지 자신을 안내해준 베아트리체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오 당신 안에 내 희망이 굳세어지고 나를 살리려 지옥에 발자국을 남기신 여인이여, 내가 본 모든 것은 당신의 힘과 사랑에서 비롯되었으니 그 은혜와 크신 덕을 알겠나이다. (중략) 내 안에 당신의 너그러움을 간직하게 하시고 이미 낫게 해 주신 내 영혼이 당신의 뜻을 따라 육체에서 풀려나게 하소서"(천국편 31곡, 79-90)


단테의 천국의 특이점은 그저 기쁘고 찬양만하는 곳이 아니다. 천국에서도 끊임없는 하나님과 연합을 위해 나아간다. 단테의 천국은 절망과 어둠의 나라인 지옥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영적 순례는 사랑과 믿음 안에서 나 뿐만 아니라 타자를 향해 끊임없이 영혼을 열어가며 고양되는 영적 정화(淨化)의 과정이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 살아도 하나님 온전한 다스리심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한다면 우리는 천국에 한 걸음 다가서는 셈이다.

(눅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박원빈 목사 / 약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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