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읽기 4: '연옥편'
[ 인문학산책 ]
작성 : 2021년 03월 29일(월) 14:58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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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의문앞에서있는 단테와베르길리우스.

개신교 신학과 교리는 연옥을 인정하지 않는다. 연옥 교리를 통해 중세 가톨릭의 부패가 극에 달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도화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연옥에 대해 명확한 언급이 없다. 독자들도 오늘 다루는 '연옥편'을 단테가 시인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든 문학적 소재로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가톨릭이 어떠한 사후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가졌는가를 엿보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지옥과 연옥의 차이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고 지옥을 빠져나와 이르게 된 곳은 연옥이다. 연옥 또한 죽은 자들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지옥(inferno)과 연옥(purgatorio)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제 나는 둘째 왕국을 노래하노니 거기는 사람의 영혼을 씻어 하늘에 오르기에 적합하게 하는 곳이라"('연옥편' 1곡, 4-6행)

지옥은 어떠한 희망도 사라진 곳이라면 연옥은 영혼이 씻음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는 곳이다. 아주 작은 구원의 가능성이 아직 열려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희망을 상징하는 표현이 연옥에 있는 '별'이다. 별은 문학적으로도 여러 가지 메타포를 지닌 시어(詩語)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별을 통해 길을 잃은 나그네는 '인도'를 받는다. 망망대해에 길잡이는 오직 별뿐이다. 우거진 숲에서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별은 나침반 역할을 해 준다. 별이 지니는 두 번째 의미는 희망이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스타'라고 하지 않는가? 빛나는 별처럼 그들의 미래가 장밋빛 희망으로 빛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별은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의 철학적 표현이다. 칸트는 그의 '실천이성비판'에서 "나에게 두 가지 별이 있으니 하나는 내 위에 있는 하늘의 별과 또 하나는 내 마음의 도덕률이다"라고 말한다.

연옥에 뜬 별은 어떤 별일까? "사랑에로 충동하는 아름다운 별(금성)"이 바로 연옥에 있는 별이다. 금성은 새벽녘 볼 수 있는 별이다. 지금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지만 새벽 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볼 수 있는 별이다. 서울 하늘에 별은 있지만 온갖 대기오염으로 별을 볼 수 없는 하늘이 되고 말았다. 우리에게 희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끝내 지옥으로 희망이 다 사라지기 전에 우리의 지구별을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연옥의 구조(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의 7단계를 거처 천국의 문에이르다)

점점 올라가며 정결해지다

프랑스의 학자 자크 르 고프는 1981년 '연옥의 탄생'(문학과지성사)에서 단테의 '신곡'이 연옥이란 개념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밝히고 있다. 연옥을 뜻하는 라틴어 pugatorium은 12세기까지 그리 자주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4세기 시인 단테가 시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연옥'의 개념을 구현해 낸 것이다.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연옥의 길이 가진 특징을 이렇게 알려준다.

"이 산은 처음에는 험난하여 힘이 들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수고가 덜하다네. 그래서 산이 아주 평탄하여 마치 배를 타고 물길을 내려가듯 수월히 오를 수 있게 되면 이 길의 끝에 다다르리라"('연옥편' 4곡, 88-94)

지옥에서의 탈출은 불가능하지만 연옥은 가능하다. 연옥의 길은 처음에는 힘들지만 오를수록 편해진다. 연옥은 노력을 통해 개선이 가능한 곳이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정화를 위해 힘들지만 천국을 향해 한걸음씩 전진한다. 연옥의 영혼이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것뿐 아니라, 현세에 있는 사람도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좀 더 신속히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다.

"은총 안에 살아가는 진실한 기도가 도와준다면 이 시간이 짧아지겠으나, 다른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리"('연옥편' 4곡, 133-135)

중세 가톨릭 교회는 단테의 '신곡'을 통해 연옥 교리를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고 죽은 자를 위해 현세에서 드리는 기도 또한 깊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 이유를 '연옥편'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우리는 불의한 폭력으로 비명횡사했기에 모두 죄인이었지만 그 때 하늘의 빛이 우리를 깨우치게 하여 스스로 뉘우치고 용서하였노라."('연옥편' 5곡, 52-57)

중세 유럽은 전염병, 전쟁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또한 폭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많았다. 단테 또한 누명으로 이곳저곳 망명을 다니는 신세였으니 세상의 악에 대한 의문이 누구보다도 많았을 것이다. 당연히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영혼들, 병으로 일찍 죽은 아이들의 영혼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신학적 물음이 생겨났다. 단테는 그의 작품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영혼이 거하는 장소로 연옥을 제시한다. 지옥에 떨어질 만큼 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바로 천국에 가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이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연옥 여행은 부활 주간 나흘 동안 이어진다. 연옥의 마지막 단계는 천상에 오를 자격을 얻은 영혼이 마지막 날아오르는 순간이다. 마지막 하늘로 도약하는 그 순간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가 나타나 천국의 길을 인도한다. 세상 지식을 대표하는 베르길리우스는 더 이상 단테의 안내자가 되지 못한다. 천국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만이 천국을 인도할 수 있다. 천국의 안내자는 단테를 위해 기도한 베아트리체이다. 다음 편에서 '신곡' 마지막 '천국'을 다루어보겠다.

박원빈 목사 / 약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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