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방정이다
[ 목양칼럼 ]
작성 : 2024년 07월 04일(목) 08:22 가+가-
나이 40에 담임목사가 되었다. 박사 학위에 실패하고 무작정 귀국했다. 오라는 곳이 없고 갈 곳도 없어 다섯 식구가 둘째 처형네 25평 집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갔다. 벌써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는 5월 말이었다. 조금 있으면 우리 포함 여덟 식구가 좁은 집에서 불타는 여름을 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아내가 불쌍해서, 애들이 가여워서, 처형이 안타까워서 하나님께서 담임목사를 허락하신 것 아닌가 싶다. 5월 말에 청빙설교를 했는데, 한 달 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으니 말이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이런 큰 은혜를 받았다. 담임목사 취임 후 유학 기간 못 만났던 동기와 선·후배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그간 소식을 나누면서 담임목사로 취임하게 된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짧고 굵게,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했으면 되었을 것을 유학 말기 박사 과정을 실패한 이야기부터, 귀국할 때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그리고 나름 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양 어떤 기도를 했는지 등등 굳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장황하게 떠들고 다녔다.

물론 변명해야 할 거리도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박사 학위를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미국에서 유학했으니 그것이 담임목사 되기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당시 교회 기준에 의하면 오히려 외국에 있었던 것이 큰 걸림돌이 되었고, 그런데도 담임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쓸데없는 내용이 많아졌다.

이렇게 침을 튀기면서 담임목사 취임 과정 중 경험한 일들을 감사와 은혜로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 필자를 당황케 하는 일이 생겼다. 여러 말 중 필자가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했는지 말했는데, 순간 어느 한 선배 목사님이 "모두 담임목사가 되고 싶은데 그것을 위해 기도 안 하는 목사가 어디 있어"라고 툭 던지는 말에 표시 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감사로 포장한 교만이 확 드러나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필자의 감격과 감사가 누군가에게 허탈과 어이없음, 그리고 자랑으로만 여겨진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더 부끄러운 것은 그날 이후로도 그런 어이없는 짓을 2년은 더 한 것 같다.

그렇게 부끄러운 교훈을 얻은 후 말을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 다짐은 목사에게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인 듯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런가? 사실 목사님들 중에서 말 못 하는 분을 본 적 있었나 싶다. 모두 전문가다. 교인들을 통해 다양한 인생 경험을 나누어서 그런지,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셔서 그런지, 목사님들은 아는 것이 많아 말도 많은 듯하다. 필자 역시 그렇게 부끄러운 경험을 하고도 여전히 말을 많이 하고 산다. 심지어 이렇게 글을 쓰면서 글로도 말하지 않는가.

하루를 정리하면서 돌아보면 너무나 많은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내뱉은 말 중 나에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고 도움 되는 말은 얼마나 될까? 부끄러운지도 모르면서 내뱉은 교만한 말들을 하루, 한 달, 일 년, 수십 년 모으면 얼마나 높은 산이 될까? 그리고 그 거대한 산 무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깔려서 신음할까?

입이 방정이다. 아니, 주둥이가 방정이다. 아니, 주둥이보다 못할 수도 있다. 사람보다 주둥이라고 불리는 입을 달고 사는 짐승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나 짐승에게 붙이는 주둥이보다 사람 입이 더 엉망이라는 생각이다. 주둥이보다 더 속된 말이 있다면 그것이 곧 사람 입이 아닐까 싶다.

글이라는 입으로 방정을 떠는 지금, 주둥이보다 못한 그 어떤 것이 아닌 그나마 주둥이로, 아니, 주둥이가 아니라 입으로, 예쁜 입으로 살고 싶다.



김신일 목사 / 성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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