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의 예술, 다림줄의 신앙
[ 최은의 영화보기 ]
작성 : 2024년 06월 18일(화) 22:49 가+가-
'찬란한 내일로(2023)'

영화 '찬란한 내일로' 스틸컷.

영화 '찬란한 내일로' 스틸컷.
영화감독 조반니(난니 모레티)는 원칙이 많고 그래서 못마땅한 것도 많다. 세상에, 촬영장에 주연 여배우가 '뮬'을 신고 나타났다. "신발이 앞이 막혀 있으면 뒤도 막혀 있는 게 옳고, 발가락이 안보이면 뒤꿈치도 안보여야" 하는데 말이다. 조반니에게 뮬은 신발이 아니고 슬리퍼이면서, "세상에 대한 비극적 시선"이다. 게다가 이 배우는 툭하면 즉흥연기로 대본을 무시하고 감독의 작품 해석에 사사건건 반박이다. 그러니까, 거기서 갑자기 키스가 왜 나오나, 그건 정치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말이다.

오지랖 넓은 조반니는 아내 파올라(마거리타 부이)가 젊은 감독과 함께 제작하는 영화가 얄팍하고 자극적인 것도 못 참겠다. 하여 그는 폭력에 대한 일장연설을 하느라 남의 영화 촬영을 무려 여덟 시간이나 지연시킨다.

"우리가 영화로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물론 미학도 있지만 무엇보다 윤리여야 해. 사람이 살면서 몇 가지 원칙은 고수해야지." 조반니가 말했다. 파올라는 이렇게 답한다. "다들 이런 영화 만들고 이런 영화 봐." "당신까지 그러면 안 되지. 안 그러더니 변했어." 조반니가 쓸쓸하게 말한다.

조반니가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 엔니오(실비오 올랜도)도 원칙과 신념 때문에 고뇌한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이 배경인 그의 영화에서 엔니오는 이탈리아 공산당 기관지의 편집장이고, 베라(바르바라 바블로바)는 마음이 따뜻하고 열정적인 당원이다. 마을에 헝가리 서커스단이 도착해 막 공연을 시작했는데, 부다페스트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스탈린식 공산주의에 항의하며 헝가리 시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소련이 무력으로 그들을 진압했던 것이다. 베라는 헝가리를 지지하는 기사를 내보내야 한다고 엔니오를 설득하지만, 엔니오는 실질적이고 정신적인 지주인 소련에 저항하는 것은 공산당의 원칙과 신념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믿었다.

영화 '찬란한 내일로' 스틸컷.
까칠한 예술가 조반니와 망설이는 혁명가 엔니오는 예술과 혁명의 두 얼굴이면서 감독 모레티의 분신이다. 넷플릭스 투자자들과의 만남에서 조반니는 전 세계 190개국이라는 수치만 기계처럼 강조하는 자본의 논리에 좌절했다. 변화하는 영화산업에 순응하는 일은 조반니와 모레티에게 영화예술의 죽음 또는 신념의 소멸과도 같은 것이었을까.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죽음을 선언하고 말 일인가.

다행히도 위기의 절정에서 조반니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우울과 여러 원칙들이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줄타기 같은 불안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에 직면한 조반니는 평소의 그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결심을 한다. 예컨대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갑자기 대사를 없애거나, 결말을 바꾸는 것 같은 일들이다.

"불행하기만 한 인생이 어딨어?"라고 읊조리며 젊은 커플에게 훈수를 두는 형형한 눈빛과 촬영장에서 두 팔 벌려 빙빙 돌고 노래하기 시작하는 몸짓과 환한 얼굴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반가울 수 없다. 결국 윤리와 영화예술에 대한 그의 신념은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믿었던 온갖 원칙들 대신 유쾌한 웃음과 모두를 행복하게 한 희망에 의해 영화 안팎에서 완성되었다.

다만 줄타기와 서커스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보자. 제작자 피에르(마티유 아말렉)는 서커스란 줄 하나에 달려 미래를 알 수 없는 현대영화에 대한 은유라고 말했고, 딸 엠마(발렌티나 로마니)는 조반니가 외줄타기처럼 항상 불안해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서커스를 서커스답게 하는 것은 바로 그 불확실성과 조마조마함이고, 곡예사들이 결국은 해내리라는 믿음이 아니던가.

돌아보면 '찬란한 내일로'의 도입부에는 줄에 매달린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마을에 전기가 처음으로 들어오는 날, 곧 가로등이 일제히 켜지며 '더 밝은(영화의 영제는 "A Brighter Tomorrow"다)' 세상이 시작될 예정이다.

그런데 희망에 찬 그 순간이 도래하기 직전 두 남자가 벽에 글씨를 쓰고 있다. 붉은 색의 "찬란한 내일로"라는 제목이 벽면 가득 드러나기까지, 그들의 작업은 위태롭지만 흔들림 없이 이어진다. 두 사람이 매달린 줄은 서커스의 외줄보다는 차라리 다림줄 같아서, 수직의 반듯함이 곧 기울임 없는 수평이동의 원천이다.

급변하는 문화와 혼란의 시대를 살아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과 진리를 따르는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신념을 가장한 원칙들에서 고집에 불과한 것들을 걸러내면서 조반니가 가장 중요한 가치를 볼 수 있었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피로 사신 복음의 본질과 하나님의 성품은 진리를 가장한 배제의 원칙과 신념으로 착각한 혐오의 언어를 거두어냈을 때 더 잘 드러날 수 있다. 다림줄의 견고함 아래 매달린 이들에게 수평의 흔들림은 '찬란한 내일로' 향한 모험이고 유연함이고 균형이며 넉넉함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가장 생산적인 메시지이다.



최은 영화평론가·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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