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님, 부흥회 하십니까?"
[ 목양칼럼 ]
작성 : 2023년 08월 29일(화) 17:02 가+가-

동료 목사들이 필자를 '전국구 목사'라고 부른다. 서울에서 교육전도사로 시작해 부산, 제주, 대전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다 이제는 보성에서 담임목사를 하고 있으니,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어느 선배 목사님의 조언 대로 부임하는 곳마다 맨 처음 기도는 '3년은 버티게 하소서!'이다. 부교역자는 3년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그 동안 부임한 교회들에서 3년, 6년, 4년, 20년을 보냈고, 이제는 68세 조기 은퇴를 앞두고 있다. 장점이라면 전국구답게 원만한 도시의 지리는 다 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길을 인도하지만 10여 년전 만해도 그렇지 않았다. 교인들은 다른 도시에 가도 신기하게 길을 거침없이 찾아가는 나를 '인간 내비'라고 불렀다. '선한 목자', '좋은 목사'라고 불러도 시원찮은 상황에서 별명이 '인간 내비'라니!
사도 바울도 넓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거침 없이 나아갔고 그 고생을 고린도후서에서 자랑했다. 11장 27~30절에서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며,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말한다. 사실 목회자라도 이런 부족함과 약점을 자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처음 시작한 사역 현장에서 필자에게 붙여진 별명은 '촌닭'이었다. 시골에 살다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에 와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다가 신대원 들어갔으니, 도시 생활은 부족하다 못해 아는 바가 전무했다. 돌아보면 주일 마다 학생이나 교사나 필자와 좌충우돌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처음 맡은 유년부서 설교였다.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은 설교를 시작하면 딱 10초만 관심을 가졌다. 그 후엔 예배가 끝날 때까지 거의 통제불능의 자유를 만끽했다. 보다 못한 유년부 부장이 한 주 동안 기도한 후 필자에게 말문을 열었다. "오 전도사님, 주일 마다 부흥회 하십니까?" 그리고 그 말조차 이해 못하던 필자에게 직접 구입한 유년부 설교집을 내밀었다.
받은 설교집을 10번을 읽었다. 그런데 잘 짜여진 설교집을 읽으면 뭔가 감이 잡힌다든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야 하는데, 당시 받은 책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황당한 설교집이었다. 그래도 부장 선생님이 "설교가 조금 나아졌다"며 격려해 주었지만, 사실은 위로의 말이었다. 보통 상황이 이렇게 되면 낙심하고 의기소침해 한 해를 겨우 채우고 다른 임지를 찾을텐데, 필자는 처음 기도처럼 3년을 버텨냈다.
당시 섬긴 교회는 이북에서 피난 온 교인들이 세운 교회였고, 눈에 띄게 사역자를 존중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형편 없어 보여도 기도하며 오래 기다려 주었다. 함부로 내보내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택하신 종들의 길을 하나님이 인도하시길 기도했다. 그분들의 기도와 인내가 뭘 몰라도 한참이나 모르던 촌닭 오 전도사를 30여 년 동안 버티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작은 누구나 서툴고 어리석고 모르고 부족하다. 어느 곳에 있든지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고 위해주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다. 역사가 길고 든든한 교회는 그 안의 기도하고 인내하고 지켜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오영복 목사 / 조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