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목사의 아우라
[ 특별기고 ]
작성 : 2022년 11월 16일(수) 14:49 가+가-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십계명이다.

성경을 배우면서 새롭게 들은 메시지는 '경천애인'이다. 첫째 되고 큰 계명이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사랑하라'(요13:34)는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였다. 그에게 두 가지 죄명을 씌운 것이다. 신성모독죄 그리고 국기문란죄이다. 그는 약자들과 함께 33년 생애를 살았을 뿐이다. 그의 탄생과 죽음, 부활과 재림은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오늘도 새로운 삶을 주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성경이 소개하는 처음 그의 제자들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갈릴리 사람 예수가 로마병졸에게 끌려갈 때에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였다.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하여 넘긴 자였다. 그러나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며 소개하다가 결국은 순교하였다.

그가 기록한 메시지에는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아무 쓸모가 없을 때에 당신의 아들을 희생적 죽음에 내어주심으로, 그렇게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내놓으셨습니다."(롬 5:8) 라고 기록하였다.

우리는 그의 사랑을 들었고 받았고 전하였고 지금도 전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부름받아 활동하다가 이제는 너나없이 은퇴라는 고갯마루를 넘어선 존재가 되었다. 2021년 말 우리 교단의 은퇴목사 수는 모두 2800여 명이다. 정년 은퇴 후 원로목사로 적절한 예우를 받는 분들은 대략 800여 명이다. 은퇴목사들을 위한 원로원이나 양로원, 요양원에서 지내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태 19:29 는 약속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목사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사람들은 목사의 아우라(Aura)를 느끼기 힘들어 한다. 신체에서 발산되는 보이지 않는 기나 은은한 고유의 향기나 분위기를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념으로 인한 나라 안팎의 분쟁과 전쟁, 이상기후로 인한 기근과 목마름, 자원다툼 등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이제 현직에서 물러난 은퇴목사들이 할 일은 요단강을 건너는 일밖에 없는 듯하다. 주일이 되어도 출석하여 예배드릴 곳이 없다는 말도 들린다. 때문에 은퇴목사들만 모여서 예배드리기도 한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가정에서 부부가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일정한 소득이 없어 생활이 어려운 분들도 많다. 총회 연금을 가입한 분은 똘똘한 효자를 둔 것과 같다. 오죽하면 하나님 다음으로 좋은 것이 연금이라는 표현을 할까? 그러나 이렇게 연금을 받는 이들도 불과 45%에 불과하다. 그나마 몇 년이 지나면 연금고갈로 수령액을 삭감할 심산이니 연금 수급자도 은근히 걱정이다.

노령연금이나 노인 일자리에 의지하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노후를 보내다가 유명을 달리하게 되면 찾아오는 조문객이 얼마나 되겠는가? 속담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외면한다던데 정승이 힘이 있을 때는 아첨을 하지만 힘이 없어지면 돌아다보지 않는 세상인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겠다. 총회, 노회, 교회에서 존재감도 없고 이름없이 빛도 없이 지내다가 조문객 하나없이 이 세상을 떠나는 은퇴목사의 모습은 정말 보기에 딱하다.



은퇴목사들의 커넥톰

'전국은퇴목사회'는 여전도회연합회, 남선교회연합회와 함께 본 교단 산하단체 중 하나로 등록되어 있다. 두 연합회는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막강한 힘을 나타내지만 '전국은퇴목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이것이 현실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하는데 교회를 사임하거나 정년으로 은퇴한 목사들에게 연결의 총체적인 적절한 커넥톰(Connectome)이 없다. 은퇴하기 전에는 노회, 총회라는 연결고리가 있었으나 은퇴 후에는 자생적이고 지역적이고 부분적인 모양새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은퇴한 이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상실감 뿐이다.

〈예장복지상조회〉는 동병상련(同病相燐)으로 만들어진 자생적인 단체이다.

어려운 목회자들이지만 커피 한 잔 값으로 위로가 되어보자는 것이다. 1만 원을 들고 어느 집에 문상을 가겠는가? 하지만 은퇴한 동역자 2800명이 슬픔을 당한 1명의 동역자 가정을 위로할 수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전국은퇴목사회'에서는 이 일을 깊이 논의하고 상조회를 만드는 일에 크게 공감하고 지난 2월 발족을 하고 〈예장복지상조회〉라는 이름으로 종로세무서에 등록을 필하였다.

〈예장복지상조회〉는 아무 것도 없다. 묘지, 납골당, 영구차, 버스. 어느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 이름은 상조회이지만 그런 것은 앞으로도 상관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것은 유족들의 몫이다. 그러나 외로운 동역자 가정을 위하여 베풀 수 있는 사랑의 복주머니를 열어 큰 강을 이루어 보자는 것이다.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모 교단에서도 일찌기 총동문회가 제안하여 만든 상조회가 2000명 규모로 회원들이 가입되어 있다. 이들은 2만원의 상조금으로 별세 가정에 평균 2000만원 이상의 조위금으로 위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다.



마지막 퍼즐

서울노회 기관목사로 정년을 몇 년 앞둔 나의 기도제목은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나의 마지막을 마무리하게 해 주십사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조각그림 맞추기에서 조각이 한 개라도 없다면 난감하다. 그러나 마지막 한 조각을 손에 들고 조각그림을 완성할 때의 감동은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목회자는 마지막에 아름다운 냄새를 남겨야 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마무리하든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누구든지 태어날 때에는 혼자서 울음을 터트리지만 주변 사람들은 웃는다. 그런데 마지막 이 세상 떠날 때도 누구든지 웃을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웃으며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목회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우리 이 세상을 떠날 때 원로 혹은 공로목사로 생을 마감하면 섬기던 교회와 노회에서 최소한 명예라도 보전하겠지만, 기관목사이거나 어렵게 목회를 하다가 은퇴를 하거나 목회 중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더라도 서로서로 곁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동역자들이 된다면 좋겠다. 최소한 마지막 문상객도 없는 쓸쓸한 빈소를 연출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필자는 총회 연금재단에서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 주기를 기대하였다. 연금재단은 가입자가 별세한 후 배우자에게 50% 삭감된 연금을 지급하는 일 외에 조위금은 전무하다.

동역자들의 마지막을 함께 애도하며 남은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담아 전한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예장복지상조회〉는 은퇴목사들이 마지막을 웃으면서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마지막 퍼즐이 되리라 믿는다.

파도에 덮칠 것인가 파도를 즐길 것인가?

파도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파도타기를 즐길 것인가?

파도타기에는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파도타기는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하면 더욱 즐거운 파도타기가 될 것이다. 어두움을 물리치고 밝히려면 누군가 촛불을 켜거나 전원을 눌러야 한다. 거실에 샨데리아가 아무리 화려해도 전원을 켜지 않으면 쓸모없는 장식일 뿐이다. 크고 작음을 말하고 색깔을 논할 수도 있다. 네 탓을 말하고 내 탓을 자책하는 것 보다 이제 상조의 전원(相助電源)을 넣도록 하자.

〈예장복지상조회〉와 '전국은퇴목사회'는 현재 노회 사회부에서 은퇴목사들을 위한 위로 경비 중에서, 상조회 가입비조차 어려워하는 은퇴목사들을 지원하여 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하였다. 현재 여러 노회들(평남,서울,안양,전주,충북등)이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예장복지상조회〉는 현재 은퇴목사 가족만이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하여 현직으로 있는 전도사, 기관목사, 선교사들도 가입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신규 목사 / 예장복지상조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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