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종교
[ 인문학산책 ]
작성 : 2022년 11월 03일(목) 06:24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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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사르 판 코르템데의 선한 사마리아인.

생활종교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생활종교(lived religion)는 어려운 가르침에 맹종하기보다 삶의 실천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는 종교를 지칭한다. 이것은 '예수 천당'과 같이 아무런 반향도 없는 외침에 집중하는 데서 벗어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노력의 이유는 경전과 교리가 무가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리가 현실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원은 내세는 물론이고 지금 여기의 삶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생활종교는 초월성과 생명성을 지향하면서 생활세계를 변화시키려 한다. 생활세계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은 종교의 지평이 생활세계에서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교는 초월성을 상실하고 기복신앙처럼 일상에 물든 종교가 된다. 이럴 때 종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는커녕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교(邪敎)가 될 수 있다. 모태 신자에게 전승된 가족의 신앙과 교회에서 굳어진 관례는 신앙인에게 익숙해져 있는 초월의 요소들이다. 전승과 관례는 신과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초월은 아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자화상일 수 있다. 진정한 종교는 관습화된 초월성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이러한 현실을 넘어서야 한다.

현실 속에서 현실을 초월하는 종교는 자기비판 없이 불가능하다. 자기비판은 신앙생활에 대한 성찰적 활동으로서 자기의 삶을 자기 위에서 바라본다. 자기 위에서 자기를 파악하는 것은 엄밀한 자기 해석이다. 자기 해석에서 새로운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반면, 자기 해석 없는 습관적 삶은 새로움과 접촉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새로움을 체험하지 못하는 삶은 하늘에서 오는 구원과 무관할 수 있다. 이러한 삶에서 새로움과 진정성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진정한 신앙생활은 늘 새로운 체험에 열려있어야 한다.

새로움의 체험은 새로운 생명의 원천이다. 신앙 가운데 새로움이 없다면 신앙을 가질 이유가 없으며 종교의 존립 이유도 없다. 새로움이 없는 신앙은 박물관 속의 종교유물과 다를 바 없다. 새로움을 체험하는 신앙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며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새로움을 전파한다. 이것은 새로운 체험의 확장으로서 공동체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공동체의 변화로 이어지는 새로운 삶은 새로운 역사를 창출한다.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은 초월적 존재와 만나는 개인의 특별한 체험이다. 변화된 삶과 역사는 생활종교가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한 자리이다.

생활종교가 필요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등장한 교회 비판은 생활세계의 조건을 무시한 모임 때문이다. 비판의 이유는 교회와 생활세계의 충돌에 있다. 교회와 생활세계의 불일치는 세상을 구원으로 이끄는 교회의 힘을 잃게 했으며 세상에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계기가 되었다. 종교와 신앙의 힘은 원래 세속을 초월로 이끄는 거룩함에 있다. 진정한 생활종교는 거룩함의 힘으로 세속을 변화시켜야 하나 우리가 겪은 것은 그 반대였다. 교회는 거룩함을 지키려 했으나 생활세계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비판에 내몰린 것이다.

하늘의 뜻으로써 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땅의 조건을 알아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세상이 어떤 상황 속에 놓여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세상의 실제를 모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것은 맹목적이다. 그 이유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신앙이 잘못된 것이라기보다 변화시켜야 할 땅이 원래 하늘과 같은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늘이 세상과 공유하는 것은 양쪽 모두에 적용되는 보편이므로 세상은 자신을 포함하는 하늘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어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실천한다는 신앙이 세상을 배제한 채 하늘의 뜻만 강요한다면 세상은 이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생활세계의 실제를 모르거나 그와 배치되는 말로써 세상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없다. 생명을 살리려는 노력이 반생명적인 모습을 보일 때 이에 대한 비판과 반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생활종교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지만 현실을 쫓는 종교가 아니라 하늘의 뜻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생활종교로서 큰 힘을 발휘해 왔다. 마음을 변화시켜 믿음을 갖게 한 계기는 다양하나 여기에 공통적인 것은 '예수 천당'의 외침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의 실천은 생활종교의 제1계명이다. 사랑과 봉사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아무리 반종교적인 사람이라도 사랑과 섬김에 침을 뱉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랑이 하늘에서 온 것이지만 땅도 이를 반기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하늘과 땅이 공유하는 보편의 실천이다. 생활종교는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달리 하늘의 계명에 무관심한 채 현실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현실에만 집중하는 마음에서 사랑의 실천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우주적 개념이다. 이것은 개념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 가운데 실현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최신한 명예교수 / 한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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