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 교회의 탄생(행 11:19-26)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작성 : 2022년 10월 27일(목) 06:35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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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8의 구도에 따라 예루살렘에서의 복음 전파(2:1~8:3), 유대와 사마리아 선교(8:4~11:18)에 이어 이방인 선교도 막이 오른다.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서 이방인도 받으셨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행 11:1~18) 복음은 이방인 지역으로 빠르게 확장되기 시작한다. 그 한 예로 행 11:19~26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안디옥교회의 설립 과정을 기술한다. 예루살렘 교회가 기독교의 모(母) 교회이긴 하지만 유대인들로만 구성된 교회였다면, 안디옥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최초의 교회이며 최초의 선교사를 파송함으로써 이방 선교의 선교적 기틀을 마련한 교회이다(13~14장).

안디옥은 로마제국 수리아(시리아) 주의 수도로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이방 종교가 모여 있던 전형적인 이방 도시였다. 이 안디옥에서 최초로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저명한 사도들이 아니라 스데반의 박해로 말미암아 흩어진 무명의 헬라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11:19; 참조 8:1, 4). 그들도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지만, 곧 중요한 전환을 맞게 된다.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 그리스도인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11:18의 "이방인에게도" 참조) 예수의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20절). "주 예수를 전파하니"라는 말은 주 예수를 복음으로 전한다는 의미로 이방인들에게 할례 및 율법과는 무관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21a절)라는 말은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을 가리키며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21b절)는 말은 이방인 선교의 괄목할만한 성공을 시사해 준다.

예루살렘 교회가 사마리아의 선교를 확인하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한 것처럼(8:14) 안디옥교회의 상황을 듣고 이번에는 바나바를 파송한다(22절). 이는 이방인 선교의 인정과 함께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초기 교회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바나바는 헬라파 유대인 그리스도인 출신으로 사도와 예루살렘 교회의 전적인 신임을 얻었으며("위로의 아들", 4:36~37) 새로운 상황을 처리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9:27 참조).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다는 말은 이방인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인했다는 의미이다(23절). 따라서 그는 어떤 율법적 요구도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주를 의지하라고 가르친다(24절). 바나바의 착한 성품과 탁월한 영성이 그의 사역뿐만 아니라 선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24절).

누가에 의하면, 바나바는 처음부터 바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갓 회심한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중개한 사람도 바나바였고(9:26~28) 다소에 있는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려온 사람도 그였다(25~26a절). 이처럼 바나바를 매개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와의 연관성을 확보하게 된다. 두 사람은 일 년간 안디옥교회에 머물며 많은 무리를 가르쳤다(26b절).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점이다(26c절). 이는 그리스도인이 더 이상 그 도시의 유대인 내부의 집단이나 이방인들의 한 종파가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제3의 그룹으로 간주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인"(christianoi)이란 말은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 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추종자들"이란 뜻으로 안디옥의 믿지 않는 외부 사람들이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26c절, 동사의 수동형에 유의). 불신자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의 말(고백), 가치관, 삶의 방식이 주변 사람들과 분명하게 구별되었고 그들이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와도 깊은 연관성을 드러냈음을 암시한다.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가 여기 외에 두 번 더 나온다(행 26:28; 벧전 4:16). 이 이름이 처음에는 별로 좋은 어감으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지만(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 "예수쟁이"라고 부른 것처럼),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자신들을 지칭하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변화시켰다(벧전 4:16 참조). 적어도 처음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삶은 같은 이름을 물려받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예컨대 "교회 다니는 사람")과는 사뭇 달랐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승호 교수 /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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