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넘을 수 있는 울타리
[ Y칼럼 ]
작성 : 2022년 09월 27일(화) 10:38 가+가-
신하진 청년 ①
고등학교 학창시절, 친구들과 퀴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은 아주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친구들은 별 생각이 없거나 퀴어 혐오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비기독교인인 친구들은 교회가 말하는 가치가 선택적인 울타리 안에서만 적용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교회를 구성하는 교인들은 모두 다양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교인 하나하나가 그 존재 자체로 서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따라서 어떠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가졌든 개인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져야 하는 교회는 사랑을 다양한 형태로 구현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곳이어서는 안된다.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는 곳이지 세상 어떤 곳에서보다도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들고 안전을 위협하는 곳이어서는 안된다. 성경의 문자주의적 해석을 근거로 인위적인 울타리를 치며 성소수자들을 배척하는 것은 모두를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교회의 모순을 보여준다.

교회에서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우리는 교회에서 연대를 통해 다시 세상을 살아나갈 힘을 얻으며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러나 연대보다는 혐오에 가까운 교회의 행태로 인해 많은 성소수자들이 교회에서 상처받고 교회를 떠났다. 그런데도 아직 교회를 떠나지 않는 성소수자들이 있다. 이들에게 교회라는 공간은 자신들을 핍박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사랑을 버릴 수 없는 곳일 것이다. 교회 공동체가 성소수자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공기가 달라질 것이다. 우리 곁에 그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우리는 서로와 함께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많은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그 공동체 안에서의 구성원들과 함께,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 위해 개인 주변의 작은 세상부터 바꾸기 위한 변혁을 시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혐오와 차별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성소수자를 정죄하는 것은 순결한 신앙의 척도가 아니다. 한국 기독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선택적이고 혐오적인 울타리를 치고 누군가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쪽이어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울타리를 치게 된다면 차별과 혐오로부터 안전하기 위한 울타리만 있을 것이며, 넘고자 하면 언제나 넘을 수 있는 울타리여야 할 것이다.

신하진 청년 / 새민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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