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성공, 신의 뜻인가?
[ 인문학산책 ]
작성 : 2022년 09월 14일(수) 13:57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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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폰 셸링

나는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데 불행한 것 같고 다른 사람은 악행을 일삼음에도 성공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것은 삶의 이유를 묻는 것과 같은 어려운 물음이다. 복 받는 삶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에게 이러한 물음은 절실하다. 그래서 복 받는 첩경이 있다는 말에 쉽게 현혹되고 이런 집회를 쇼핑하듯 찾아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긍정적으로 보면 악인의 성공이 신의 뜻인지 묻는 것은 철학적-종교적 욕구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선악에 대한 물음에 속한다. 이 물음에는 악인의 성공과 신의 뜻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있는지 밝혀 달라는 요구가 들어있다, 선한 행동은 성공이라는 선한 결과로 이어지고 악한 행동은 실패와 형벌이라는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면 세계가 수미일관하게 보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선한 행동의 원인이 선한 신에게 있고 악한 행동의 원인이 악한 신에게 있다고 한다면 선악의 인과관계를 쉽게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만물의 근원인 신이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둘이라는 모순에 봉착한다. 모순을 허용한다 해도 선한 신이 악행을 일삼는 사람에게 성공을 허락할 수 없으며, 악한 신은 그 악한 본성 때문에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좋은 결과를 허락하지 않는다. 두 신은 서로에게 관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한 신과 악한 신을 통해 선악을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셸링(F. W. J. Schelling, 1775~1854)은 '인간적 자유의 본질'(1809)에서 자유를 '선악의 가능성'으로 규정한다. 선과 악은 구체적인 행위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라기보다 자유의지에 따라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로 나누어진다. 행위의 출발을 선이나 악으로 볼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오로지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가 선행과 악행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선이나 악은 행위에 따라 결정되므로 자유는 선악의 가능성이다. 인간의 행위는 이미 결정된 선이나 악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유롭게 출발한다. 문제는 행위가 어떤 경로를 거쳐 선과 악으로 귀결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물음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자기성'이다. 자기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창조주를 중심에 두고 자신은 주변에 머물 수 있다. 그는 개별의지로서 자기를 초월하는 신의 의지를 인정한다. 이와 다르게 자기는 욕심에 사로잡혀 자신이 신의 의지와 동일한 의지를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악한 행위는 자기성의 탐욕이 신의 의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때 발생한다. 죄와 잘못은 피조된 존재가 그를 창조한 존재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에 반해 중심에 있는 신의 의지를 인정하고 스스로 주변에 머물 때 그 행위는 선한 행위가 된다. 선악을 결정하는 기준은 자기성이 설정하는 중심과 주변의 관계이다. 스스로 중심이 되려는 자기성은 신의 의지를 밀어내고 개별성으로 남는 이기적 의지라면, 중심을 인정하고 스스로 주변에 머물려 하는 자기성은 신의 의지를 따르는 의지이다.

성선설이나 성악설과 다르게 자유의지에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 선과 악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과 신의 결속 여부, 또는 개별의지와 보편의지의 결속 여부이다. 개별의지가 신적 척도와 균형을 유지한다면 이로부터 선한 행위가 나온다. 반면에 악한 행위는 신의 의지와의 분리와 단절에서 나온다. 셸링은 이것을 빛과 어두움의 원리로도 설명한다. 자기성이 빛의 원리와 통일되어서 신적인 힘과 결속되어 있으면 그 행위는 선하다. 반면에 자기성이 빛의 원리와 단절하고 어두움의 원리를 따르면 그 행위는 악하다. 실행에 옮기지 않은 탐심이나 음욕은 악이 아니냐는 이의제기는 셸링의 자유론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없다. 이런 마음을 지배하는 것도 신의 의지와 결속된 의지가 아닌 이기적 의지이기 때문이다. 탐심과 음욕은 빛의 원리에 눈을 감고 어두움의 원리만 따르는 의지이다.

악인의 성공이 신의 뜻인가? 이 물음에 단정적으로 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악인을 규정하는 일이 간단하지 않으며 성공의 잣대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셸링의 자유론을 통해 유추해 보면 악인의 성공과 신의 뜻 간에는 필연적 연관이 없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선한 행위이며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신의 의지와의 연관이다. 셸링은 인간의 타락 가능성을 동물과 비교한 바아더(Fr. Baader)의 한탄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인간의 타락이 본능을 따르는 동물에 멈추면 좋겠으나 실제로 인간은 동물보다 못하거나 동물 위에 있다. 사악한 인간은 동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짐승보다 못한 삶을 성공적으로 보는 것이 문제이지만 성공의 잣대를 물질에만 두는 것도 문제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성공이 곧 복이라는 믿음보다 스스로 선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어떤 자유를 선택할지 스스로 묻고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이다.

최신한 교수 / 한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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