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골목골목, 복음화 위한 고난의 발자취
[ 어서 와, 총회 사적지는 처음이지 ]
작성 : 2022년 08월 22일(월) 08:45 가+가-
8. 광주·전남 서부지역
야월교회 순교지,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묘원, 우일선(Wilson) 선교사 사택, 옛 미국남장로교 광주선교부 부지, 오방 최흥종 목사 신림기도처, 비금덕산교회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묘원(제28호).

광주사직도서관 앞에 위치한 선교기념비. 광주 지역 첫 선교를 기념하기 위해 전남노회가 세웠다.
광주사직도서관 앞에 위치한 선교기념비. 광주 지역 첫 선교를 기념하기 위해 전남노회가 세웠다.
【 광주·영광=최샘찬 기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사적지를 찾아 광주 등 서부지역을 방문했다. 전라도에 복음을 전한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의 흔적을 찾는 과정에 총회한국기독교사적(유물)협의회 회장 손산문 목사와 서기 이전규 목사가 함께했다.

총회 사적지를 방문하기 전, 광주시립사직도서관 앞에 있는 선교기념비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미국남장로교가 파송한 유진벨(배유지) 선교사는 나주와 목포를 거쳐 광주에 복음을 전했다. 1904년 유진벨 선교사가 오웬 선교사 등과 광주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광주 선교의 첫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전남노회가 세운 기념비다.

선교사들은 양림동에 선교부지를 확보했고, 이후 서양식으로 지은 양관거리가 조성됐다. 광주 양림동은 지금도 광주 역사·문화 거리의 중심지이며, 광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초기 선교사들의 흔적을 빼놓을 수 없다. 선교기념비 옆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오방최흥종기념관과 유진벨선교기념관(양림미술과 내)이 있으니, 여유가 되면 둘러보자.



# 광주에 복음 전한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흔적, 한눈에

선교부지가 조성됐기 때문에, 선교기념비 바로 옆 호남신학대학교를 중심으로 총회 사적지들이 모여 있다.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묘원(제26호), 우일선(Wilson) 선교사 사택(제27호), 옛 미국남장로교 광주선교부 부지(제28호·제중로 77) 등 한국기독교사적 제26~28호를 도보로 한번에 둘러볼 수 있다.

호남신대와 연결돼 있는 양림동산 일대인 미국남장로교 광주선교부 부지에는 선교사 사택 등 여러 흔적이 있다.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7호인 호랑가시나무를 비롯해 피터슨 선교사 사택터, 치과의사 뉴스마·원요한(원진희)·헌틀리 선교사 사택 등 근대 역사와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자취가 깊게 남아 있다.

수령 약 400년인 광주광역시기념물 제17호 호랑가시나무. 선교사들에 의해 소중히 보호돼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옛 미국남장로교 광주선교부 부지(제28호).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잔디밭과 우일선(윌슨) 선교사 사택이 나온다. 1910년 전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택은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다. 우일선 선교사는 1908년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의 원장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최흥종 목사와 서서평 선교사와 함께 보살피고, 여수 애양원을 개척하는 등 한국의 한센병 치료에 큰 업적을 남겼다.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이름이 새겨진 돌계단이 나온다. 한국의 순교·순직자들의 이름을 새겨둔 '고난의 길'이다. 고난의 길을 통과하면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묘원이 나온다. 유진벨, 서서평, 부란도, 로스 등의 선교사와 그 가족의 묘 22기, 그리고 양화진과 전주에 안장된 남장로교 선교사들 묘비 23기를 재현한 총 45기의 묘비가 있다.

묘비와 관련해 손산문 목사는 결핵퇴치운동을 위해 왔다가 본인이 결핵에 걸려 사망한 선교사, 선교사인 딸이나 조카를 보러 와 죽은 가족, 태어난지 하루만에 죽은 선교사 아이들 등 사연을 설명하면서, 이곳이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교육의 장"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기독교사적 제27호로 지정된 우일선(윌슨) 선교사 사택. 벽은 두께 55mm의 회색벽돌로 네덜란드식으로 쌓았고 내부는 희반죽으로 마감, 고막이(기둥 하부를 가로로 연결하는 부재인 하방을 받치는 부재) 부분은 화강석을 쌓았다. 1층과 2층을 구별하기 위해 벽돌로 돌림띠를 두었다.
순교순직자의 이름이 새겨진 고난의 길.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묘원(제26호).
오방 최흥종 목사 신림기도처(제35호).
# 무등산 오방 신림기도처 둘러보고, 차 한 잔

호남신대와 선교부 부지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전남노회 신림교회(이전규 목사 시무)가 있다. 신림교회에서부터, 한국기독교사적 제35호인 '오방 최흥종 목사 신림기도처'까지 묵상하며 걸어 보자. 무등산국립공원 내부로 3.5km 등산로를 오르면 신림기도처(증심사길 176-45)가 나온다.

신림기도처는 '걸인과 나환자의 아버지'라 불리던 오방(五放) 최흥종 목사(1880~1966)가 복음을 전하던 곳이다. 우일선 선교사와 제중원에서 나병환자를 돌봤던 최흥종 목사는, 가족을 떠나 무등산에서 수련원을 짓고 걸인들과 살며 복음을 전했는데, 이곳이 바로 신림기도처(현 신림교회 오방수련원)다.

신림기도처, 현 오방수련원 안에서 차를 마시는 손산문 목사(우)와 이전규 목사(좌).
신림교회는 '차'를 통해 최흥종 목사의 오방 정신을 전하고 있다. 기도처 뒤 녹차밭에서 직접 수확한 차를 무등산에 오르는 주민들에게 나눈다. 15평 넓이의 기도처 옆에는 3평짜리 작은 사택, 찻방이 있는데, 기관이나 교회가 방문해 요청하면 '기독교 행다'를 제공한다.

2015년 춘분에 파종해 지난해부터 녹차를 수확했다는 이전규 목사는 "최흥종 목사의 '오방' 정신을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다가 직접 재배한 무등산 야생녹차를 통해 인문학 콘텐츠를 제공하기로 했다"라며, "주민들은 무등산국립공원 안에 기도처가 있다는 것을 신기해 하고, 기념비와 기도처를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손산문 목사는 "과거의 역사를 잘 현재화시키면 박제된 역사를 우리 시대에 살아 숨쉬는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라며, "총회의 모든 사적지가 이를 본받아 지역 주민들이 쉽게 접촉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기독교 행다를 소개하는 신림교회 이전규 목사.
야월교회 기독교인순교기념관(제20호).

# 전교인 집단순교 현장, 야월교회 기념관에서 보는 순교신앙

광주 시내에서 서쪽으로 1시간 가량 차로 이동하면, 순교신앙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영광군의 야월교회(심재태 목사 시무)가 있다. 6·25전쟁 당시 전교인 65명이 집단순교한 이곳은 한국기독교사적 제20호로 지정됐다.

야월교회의 기독교인순교기념관에선 당시 순교현장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동족상잔과 민족의 아픔이 집단순교의 기록에 녹아 있다. 기념관 2층의 넓은 시청각실에서 다큐멘터리 영상까지 꼭 챙겨 보자.

기념관에서 설명하는 최종한 원로장로(우).
기념관은 야월교회의 순교 사건뿐 아니라, 한국 선교의 시작부터 호남지방 기독교의 역사, 한국 교계의 순교·순직자들을 폭넓게 전시하고 있다. 광주에서 확인한 유진벨 선교사를 중심으로 미국남장로교 선교사들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

기념관을 방문하면 12년간 안내해온 최종한 장로(야월교회 원로)의 생생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집단순교가 일어날 당시 마을의 9살 소년이었던 최 장로는 당시부터 현재까지 마을의 모든 변화과정을 지켜본 살아 있는 증인이다.

열변을 토하며 과거 상황을 설명한 최종한 장로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시 못 해. 과거 가해자 후손들이 지금 다 하나님을 믿고 있어!"라고 말했다. 야월교회 심재태 목사는 "이 기념관이 한국교회 성도들이 순교 신앙을 되찾는 회복의 길로 사용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함께 기념관을 둘러본 손산문 목사는 "보기 드물게 전교인이 집단순교한 야월교회의 사례를 단순히 공산당이나 국가관과 연결시켜 진영논리로 해석해선 안 된다"라며, "보통 피해를 받으면 복수나 원한의 감정이 생기지만, 오히려 이러한 가운데 용서와 화해 등 기독교적 가치를 사회에 제시한다면, 남과 북이 대립하는 우리 사회에 평화와 관련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념관 2층에 위치한 시청각실에선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비금덕산교회(제39호).


# 일제강점기에 교인들이 지킨, 1920년대 구입한 이북 놋종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는, 미국남장로교 도서선교의 첫 열매가 된 교회가 있다. 비금덕산교회(황규석 목사 시무)는 과거 이북에서 제작한 유서 깊은 놋종을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사적 제39호로 지정된 이 놋종은 1920년, 김봉현 조사 당시 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놋종 아래엔 '관서로 종'이라는 글씨가 한글로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서북로'라는 평안도 일대를 지칭하는 말로 보인다. 대부분의 교회 종은 도르래 장치로 프레임에 고정된 종을 움직여 종 안에 매달린 추를 내타해 소리를 낸다. 그러나 비금덕산교회의 종은 도르래 바퀴가 아닌 막대 장치가 설치돼 있다. 이는 이남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제작 기법이다. 일제강점기 많은 교회 종들이 공출 당했는데, 교인들의 노력으로 빼앗기지 않은 귀한 종으로 평가받는다.

인구 1834가구에 3700여 명의 주민(2013년 기준)이 거주하는 작은 비금도에서 비금덕산교회는 면사무소와 관공서 등 섬 전체의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교회는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교회의 역사적 의미와 볼거리를 제공하려 노력 중이다.

비금덕산교회의 놋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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