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세계와 악
[ 인문학산책 ]
작성 : 2022년 08월 24일(수) 21:19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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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

변신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 하나님이 유일하고 완전하며 선한 만물의 창조주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세계의 기원과 방향에 대한 명백한 질서를 담고 있다. 그런데 선한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 가운데 선하지 않은 일이 자주 발생한다. 선한 분에게서 나온 세계는 당연히 선해야 하는데 이 세계 가운데 어떻게 선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원인에서 결과가 나오는 것이 마땅하다면 선한 원인에서 어떻게 악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악한 일이 발생해도 이를 창조주와 연결하지 않고 이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길인가?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면 선한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근거 없는 믿음인가?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가 이 물음을 붙들고 씨름했으나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지만 미적분을 발견한 철학자 라이프니츠(G. W. v. Leibniz, 1646~1716)의 시도는 의미심장하다. '신은 무한히 많은 가능 세계들 가운데 가장 좋은 세계를 선택했다.' 만약 가능한 세계(possible worlds) 가운데 가장 좋은 세계가 없었다면 신은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능한 최선의 세계! 간략하면서도 함축이 많은 명제다. 건축가가 다양한 설계도를 생각할 수 있고 소설가가 각양의 이야기 모티브를 생각할 수 있듯이, 신도 무한히 많은 가능 세계를 생각할 수 있다. 신은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오로지 하나의 세계를 선택했고 창조했다. 라이프니츠는 '변신론(辨神論), Theodicee'에서 이러한 주장을 펼친다.

가능한 세계 가운데 가장 좋은 세계는 완전한 세계다. 완전한 세계는 조화롭다. 피라미드의 높은 계단을 올라갈수록 더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지며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면 가장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높은 곳에 서면 피라미드의 토대를 볼 수 없다. 세계를 경험할 때마다 아름다움에 접할 수 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현세를 벗어나 영원한 세계에 들어갈 때 최고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세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것은 영원한 이상이다. 이처럼 신은 위로 아래로 무한히 펼쳐질 수 있는 가능한 세계들 가운데 가장 좋은 세계를 선택했다. 이러한 생각은 창세기와 통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31)

가장 좋은 세계는 가장 아름다운 세계이기도 하다. 미학(美學)에서는 가장 좋은 세계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다. '완전한 것이 아름답다.' '조화로운 것이 아름답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대표 정의(定意)이다. 창조신학의 전제이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의 최초 최고의 기준은 완전함과 조화로움이다. 이러한 정의의 토대는 아름다운 우주와 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다. 그래서 교회음악은 가장 좋은 세계의 완전함과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주일 예배에서 올리는 찬양도 가장 좋은 세계의 완전함과 조화로움을 드러내야 한다. 완전하고 조화로운 소리는 설교의 언어에 앞서 회중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문제는 가장 좋은 세계 가운데 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계 속에 악이 존재하는 것은 세계를 창조한 신이 악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반박하기 위해 악의 존재를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신을 옹호하는 '변신론'이 등장한다. 라이프니츠는 악을 형이상학적 악, 자연적 악, 윤리적 악, 이 세 가지로 나눈다. 형이상학적 악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유한성에 기인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것은 완전하고 무한한 신의 선함에 대한 인간의 악함이다. 결핍이 곧 악이다. 이것은 인간 존재에게 주어진 명백한 사실이며 이에 대한 이의제기는 무의미하다.

자연적 악은 고통과 슬픔과 불행이다. 고통이 없는 인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고통은 잘못에 대한 벌로 주어지나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하기도 한다. 라이프니츠는 자연적 악을 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가장 좋은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자연적 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는 그 자체로 악이지만 이러한 악으로 인해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 아담의 악이 없었다면 선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라이프니츠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러한 생각을 피력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씨앗의 비유에도 이러한 생각이 들어있다는 라이프니츠의 설명이다. 온전한 씨앗은 말라버린 씨앗과 썩은 씨앗으로 인해 더욱 빛난다. 이렇게 보면 자연적 악은 선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요소이다.

윤리적 악은 인간의 죄에서 성립한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악이다. 인간의 죄는 자유의 대가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남용한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가장 좋은 세계를 보존하지 못한 잘못으로 이어지므로 신속히 뉘우침과 교정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잘못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으로 결단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가장 좋은 세계를 보존하는 우주적 문제이다.

최신한 명예교수 / 한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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