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에 삶으로 응답하신 큰 스승
[ 추모사 ]
작성 : 2022년 06월 20일(월) 12:01 가+가-
나의 스승 주선애교수님을 추모하며
나에게는 큰 산과 같았던 나의 스승 주선애교수님께서 6월 19일 11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큰 산처럼 존재만으로도 '이것 봐! 이런 인생 정말 가능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던 교수님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사실 주 교수님이 얼마나 큰 스승인지를 나는 그분 아래서 대학 4년을 배우고도 몰랐고, 교수님의 뒤를 이어 장신대 기독교교육과 교수가 되면서도 몰랐다. 오히려 새내기 여학생이었던 우리들에게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셨을 때, 속으로 '여학생들이라고 너무 순종만 강조하시네요'라며 반발했었다. 교수님 면전에 대고 "왜 우리 학교에는 기독교교육 교수가 한 명밖에 없나요?"라고 불평하던 철딱서니 없던 3학년 시절도 있었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장신대의 교수가 되었을 때 나는 주 교수님보다 훨씬 뛰어난 학자가 될 것이라고 내심 우쭐했었다. 부끄럽게도.

교수로서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맛보면서 가르침이란 자신이 배운 알량한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즈음, 나는 주선애 교수님을 다시 보았다. 그분의 가르침은 어떤 외국의 기독교교육이론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시대와 상황을 그 자체로 하나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응답하는 삶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분의 수업에서는 그분이 본 판자촌 뚝방마을의 이야기, 지리산 전도이야기, 힘없는 장애인과 여성 이야기들이 울려 퍼졌고, 그분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뚝방마을로, 지리산으로, 도시의 야학으로 장애인과 여성단체로 갔고, 그곳에서 그들의 목숨까지 바치며 헌신하는 일이 일어났다. 25년 넘게 대학에서 가르친 나는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그 어려운 일이 교수님의 가르침에서는 일어났다.

나는 그것이 교수님이 먼저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분의 자서전 '주님과 함께'를 읽고 알았다. 그분은 어떤 상황과 맞닥뜨리면 어김없이 "주님, 왜 이것을 제게 보여주셨습니까?"라고 묻고, 하나님의 답이 떨어지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순종하는 삶을 사셨다.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은 공과책 하나 없이 크는 교회의 어린이들을 보여주셨고, 판자촌의 사람들을 보여주셨고, 미신에 빠진 지리산을, 힘없는 여자 전도사들을, 탈북자들과 어둠 가운데 있는 북한을, 갈 곳 없는 은퇴여선교사들을 보여주셨다. 그분이 본 것은 그대로 그분을 '최초 여성 기독교교육학자', '기독교교육과 최초 설립자', '교단 최초 커리큘럼과 공과 개발자', '여름 교사강습회의 선구자', '여교역자 연합회 창립 및 여교역자 안식관 건립자', '탈북자의 어머니', 심지어 98세의 나이에 '여선교사 안식관 건립자'로 만들었다. 시대와 상황은 그녀의 교육의 장이었고, 하나님의 음성은 교사였고, 순종은 그의 교육 방법이었다.

삶 자체로 가르치시는 이런 스승이 나는 될 수 있을까? 그분이 큰 스승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미 나는 그분의 백분의 일도 못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본 것, 한국의 기독교교육계에 그런 스승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이 나의 스승이었다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그리고 교수님께 깊이 감사한다. "너무 시간이 없어서 걸으며 기도했어" 하셨던 교수님이 천국에서는 편히 쉬시기를, 하나님 곁에서 늘 행복하시기를 이 미련하고 못난 제자가 기도한다.



양금희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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