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교회의 코이노니아의 원천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작성 : 2022년 06월 10일(금) 08:16 가+가-
14. 위기 시대의 코이노니아 교회론(2)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코이노니아의 전형이다. 그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였고,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는" 교회였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교회였다고 사도행전은 소개한다. 실로 나눔과 섬김과 참여와 사귐과 연합의 코이노니아를 잘 실천한 이상적인 교회다. 바울 역시 서신 곳곳에서 교회의 코이노니아의 삶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것은 구제하는 것, 위로하는 것, 여러 은사를 함께 나누는 것, 긍휼을 베풀며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고 손 대접하는 것, 마음을 같이 하고 서로 섬기는 것, 화목하게 지내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성경이 말하는 코이노니아는 교회의 기능을 넘어선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코이노니아라는 점이다. 즉 교회의 코이노니아를 가능케 하는 분은 바로 성령이라는 것이다. 성령은 다름 아닌 코이노니아의 영이기 때문이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를 보자. 그들은 친교공동체가 되기 위해 무언가를 계획했는가. 이상적인 코이노니아의 교회를 만들기 위해 무슨 노력을 기울였는가. 성경은 전혀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다. 코이노니아는 그들의 기획이거나 노력이 아니다. 세속적 동기 때문도, 이스라엘 해방이라는 정치적 동기 때문도, 집단적 공동체 생활을 갈망한 때문도 아니다. 섬김과 나눔과 하나됨을 위하여 스스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기다리던 성령이 임했고,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했고, 예루살렘 교회는 변했다. 나눔과 친교의 공동체가 되었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성령의 임재 때문이었다. 성령이 코이노니아의 동인이었고, 코이노니아는 그 결과였다. 다시 말해 그들이 기뻐하고 나누고 섬기고 하나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였다. 성령께서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주셨던 것이다.

바울 역시 코이노니아를 성령의 사역으로 보고 있다. 성령은 코이노니아의 영이라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코이노니아)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13:13).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은혜는 그리스도에게, 사랑은 하나님에게, 코이노니아는 성령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빌립보서에서도 그는 "성령의 교제"를 언급하고 있다. 에베소서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코이노니아는 교회의 행위이기 이전에 성령 하나님의 행위이다. 그는 사귐과 일치와 연합과 나눔과 참여를 만드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초대하시는 분이시다. 유의할 것은 사귐과 나눔과 일치와 섬김은 사랑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사랑이 없는 사귐은 진정한 사귐이 아니며, 사랑이 없는 일치는 형식일 뿐이다. 바울의 말처럼 사랑이 없는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코이노니아는 사랑에 근거한다. 사랑은 코이노니아를 만들며, 코이노니아는 사랑에서 나온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코이노니아의 영이신 성령은 사랑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교회는 코이노니아 공동체라는 것, 코이노니아는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 그러므로 교회의 코이노니아는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고 돌보시는 성령의 코이노니아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 등이다. 그러므로 역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하나님의 영의 코이노니아에 참여하여 나누고 섬기며 하나되게 하며 연대해야 한다. 성령의 코이노니아로 충만한 교회는 성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교회의 분열을 막고, 성도들을 향한 나눔과 진정한 사귐을 추구해야 한다. 나아가 코이노니아의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향해야 한다. 세상의 아픔과 분열을 치유하고 평화를 심어야 하며, 세상을 진정으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성도의 교제가 성도들만의 교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세계는 팬데믹과 자연재해와 전쟁의 위협으로 크나큰 상처와 분열과 아픔과 생명의 상실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코이노니아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생명을 사랑하시고 불의를 제거하시며 아픔과 상처를 싸매시는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코이노니아는 오늘의 교회와 세계를 위한 성령의 요청이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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