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나눔, 그리고 코이노니아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작성 : 2022년 06월 03일(금) 16:05 가+가-
13. 위기 시대의 코이노니아 교회론(1)
지난 2년여 동안 지독한 펜데믹 공포와 아픔과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코로나가 지나가는 듯하다. 그럼에도 그 여파는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여기저기 헤집어 놓은 상처가 깊어 쉬 나을 것 같지 않다. 이뿐 아니다.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한 아픔과 고통이 훑고 지나갔다. 산이 타고 집도 타고 마음도 함께 타버렸다. 게다가 세계는 전쟁의 고난과 위협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 비유컨대 마치 종말의 징조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하다. 세계 도처에서 비명이고 아우성이다.

갑자기 십자가가 떠 올랐다.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아들이 외칠 때에 잠잠하시던 하나님의 침묵이 생각났다. 아들은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다. 이어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 찢어지는 하나님의 마음이 내 머리 속에 오버랩되었다. 오늘의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세계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지금 이 상황이 혹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교회론, 세상의 아우성에 대응하는 교회론, 바로 이 교회론이 코이노니아 교회론이다. 그러므로 코이노니아 교회론은 오늘에 시급한 교회론임에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코이노니아는 섬김과 나눔과 참여와 사귐을 의미한다. 그래서 코이노니아를 단순히 성도들간의 친교와 나눔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의미도 담고 있지만 보다 더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나아가 성경은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연보를 코이노니아라고도 부른다. 코이노니아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밝히기 전에 우선 전통적 교리들이 코이노니아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코이노니아를 언급하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문서는 바로 사도신경이다. "성령"과 "거룩한 공교회"와 함께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첫째로 주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보배와 선물의 동참자로서의 모든 신자들은 한 교제를 가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자기가 그가 주시는 선물을 다른 회원들의 유익과 복지를 위하여 자유롭게 또한 기쁨으로 사용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리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성도의 교제를 다루고 있다. 축약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은총과 고난과 죽음의 부활과 영광 안에서 그와 교제를 가진다." 2. "성도들끼리는 사랑으로 각자가 받은 은사와 은총을 나눈다." 3. 성도들은 모든 면에서 "상호 간의 선을 이루기 위한 의무를 행해야 한다." 4. "공적으로 성도의 생활을 하겠다고 공포한 성도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에 있어서 거룩한 교제와 교통을 지속할 의무가 있다." 5. "상호간 덕을 세우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영적 봉사를 해야 한다." 6. "물질적으로도 각자의 능력과 필요성에 의해서 서로 도와야 한다." 7.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이 교제는 어느 곳에서든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 교단의 문서 중 21세기신앙고백서는 코이노니아를 기본 개념으로 담고 있다. 첫 부분을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탱하시며, 구속하여 성화시키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사 영화롭게 하시며, 영원한 사랑의 교제(코이노니아)를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인류사회의 공동체성,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사랑과 생명의 교제의 근거이시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교제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깨어졌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교제를 만드시고, 성령을 통하여 이 교제가 이 땅에 실현되어 새하늘과 새땅에서 영원한 교제가 완성된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외의 문서들에도 코이노니아의 개념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코이노니아는 단지 남을 돕고 섬긴다는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를 갖는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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