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설 재난지원금에 대하여
작성 : 2021년 04월 05일(월) 11:04 가+가-

강흔성 목사

며칠 전 필자가 속해 있는 노회의 한 후배 목사가 종교시설 재난지원금 안내 공지를 받았다며 혹시 가짜뉴스인가 하고 목사회 밴드에 글을 올렸다. '몇 차' 재난지원금, '취약계층' 재난지원금, '긴급' 재난지원금, '소상공' 재난지원금 등은 들어보았지만 '종교시설' 재난지원금이란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 "아마 가짜뉴스일거야" 하고 있는데 또 다른 목사가 A지자체에서 관내에 있는 종교시설에 대해서 50만원 상당의 방역물품(마스크, 열 체크기)을 제공한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혹시 내가 살고 있는 지자체에도 이런 계획이 있나 해서 시청에 전화를 해 보았더니 일언지하에 "그런 계획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종교시설' 재난지원금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들리면서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것은 왜일까.

그동안 교회는 무조건 사회와 이웃에 '주는 자'로 존재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더불어 봉사(디아코니아)도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에 큰 교회건 작은 교회건 매년 봉사비를 예산으로 편성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이웃에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계층을 비롯해서 구치소, 소방서, 경찰서 등 공기관에도 살펴야 할 곳이다.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 때에는 특별헌금을 해서라도 후원금을 내야지만 교회가 할 일을 한 것 같아 속이 편하다. 목회자의 사례비는 인상하지 못해도 사회봉사비는 매년 조금이라도 인상해야 교회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코로나 상황에서 교회의 재정이 줄어들어도 사회봉사비 만큼은 오히려 인상을 하기도 했다. 사회가 어려울 때 교회가 할 일은 이웃의 아픔을 돌보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책임감 때문이었다. 큰 교회들은 긴축재정을 하면서도 이웃은 물론이고 어려운 미자립교회를 돕는 일에 많은 재정을 사용한 것으로 안다.

이렇게 교회는 큰 교회건 작은 교회건 이웃과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늘 '주는 자'로 존재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간혹 교회가 이웃으로부터 피해를 입어도 교회라서 할 말을 못하고, 목회자라서 손해보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는 '받는 곳'이 아니라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에서 종교시설 재난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이 든 것은 교회가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고,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은 교회는 늘 주기만 했는데 받는 것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국가나 지자체에서 도움을 받아도 되는가. 교회마다 상황마다 좀 다르기는 하지만 원론적으로는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첫째 이유는 재난지원금의 성격상 재난구호금인데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재난을 당했다는 사회적 시선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는 '주는 자'로 사회에 존재해야지 '받는 자'로 존재하면 그만큼 복음적 영향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셋째, 교회가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교회는 자칫 천덕꾸러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의도가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작은 교회가 큰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울 것도 없는 아름다운 일이지만 교회가 사회로부터 구호성격의 도움을 받는 것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3년 전부터 목회자도 종교인소득신고를 해서 세금을 내고 있다. 여타 직종에 비해 비교적 혜택이 많아서 과세대상 목회자는 많지 않지만 목회자도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떳떳한 일이라 본다. 혹자는 근로장려금이나 자녀장려금을 받는 것도 부담이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목회자로서가 아니라 납세자로서 제도와 법에 따라 받는 것이기 때문에 떳떳하게 받아도 된다. 교회가 비영리법인으로서 비과세 혜택을 받는 것도 법과 제도에 따라 받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교회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웃에 늘 '주는 자'로 존재하면 좋겠다. 주는 자의 손을 채워주시는 것도 주님이시지 않은가. 총회 차원에서 종교시설 재난지원금을 사양하고 더 어려운 이웃에게 돌리라는 성명서 하나 내면 어떨까.



강흔성 목사/수원상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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