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을까?
[ 현장칼럼 ]
작성 : 2021년 03월 26일(금) 06:27 가+가-

홍윤경 부장

작년 연말, 여의도 칼바람을 맞으며 단식농성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산재 노동자 유가족들. 24살 젊은 나이에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은 故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절규했다. "매일 6명 이상이 죽고 매일 여섯 가족 이상이 지옥으로 간다. 나처럼 아파할 그들을 생각하면 조바심에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그들이 바라는 건 하나, 일하다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노동자가 생기지 않도록 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었고, 보다 못한 당사자들이 추위와 코로나를 뚫고 직접 나선 것이다. 단식투쟁 29일 만에 부족하나마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자그마한 불씨가 생긴 것이다. 이들이 바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 아닐까?

20대 초반에 용접공이 된 여성 노동자가 있었다. 노조 대의원이 되고,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했다가 국가로부터는 고문을 당하고 회사로부터는 해고되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우려는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동료들에 대한 부당한 정리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홀로 35m 크레인에 올라가 309일이나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는 전국적인 "희망버스"의 불을 지폈다. 10년이 지나 해고상태 35년 만에 정년을 맞은 그는 또다시 기적을 만들었다. 암 투병 중임에도 34일 동안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으면서 수천명이 함께 했고,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영감을 받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김진숙, 이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짜게 만드는 소금이 아닐까?

아시아나 기내 청소를 하던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좁은 기내에서 온몸을 구겨가며 열심히 일해서 무릎 시술을 받는 등 몸에 무리가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위기상황에서는 가장 먼저 내팽개쳐졌다. 코로나가 닥치자 고용유지지원금 신청도 없이 곧바로 무기한 휴직을 강요받았고 이를 거부하자 해고되었다. 너무나 억울해서 노동청 앞에 천막을 쳤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연이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지만 사측은 복직시키지 않고 행정소송을 이어갔다. 이를 악물고 버티던 노동자들도 힘이 빠졌다. 찾아오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때 기독교인들이 찾아왔다. 매주 농성장 앞에서 기도회를 하고, 사순절이라고 어떤 목사님은 일주일 금식기도를 했다.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살려 주었다" 농성장에서 만난 한 여성 노동자가 눈물을 훔치며 한 말이다. 기도회에 참석했던 필자는 그 말 한마디에 큰 위로를 받았다. 과연 누가 누구를 위로한 것일까?

평신도 선교사를 꿈꾸던 여성노동자가 있었다. 부당하게 차별을 없애고자 노동조합 창립에 참여했고, 노조활동이 곧 선교활동이라고 믿었다. 17년간의 노조간부 활동 중 4번의 해고와 3번의 복직을 경험했다. 정규직-비정규직이 같이 싸워서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 차별 철폐를 이뤄낸 510일 파업투쟁 기간에는 구속도 되었는데 이로 인한 4번째 해고에서는 아직 복직을 못하고 있다. 현재 선교단체에서 일하는 그는 고통스러웠던 투쟁 기간을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꼽는다.

이처럼 노동자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기꺼이 맞이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노동자들의 권리가 조금씩이나마 신장되어 왔다. 나아가 그들은 다양한 사연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지난 63년간 위와 같은 노동자들의 친구로 살아왔다. 노동자들과 교회를 연결하고, 신학생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교회 안에 반드시 필요한 기관이 아닐 수 없다.

짐작하겠지만 4번 여성노동자가 바로 필자다. 4월 1일은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새로운 평신도 사역을 시작한지 딱 10년이 되는 날이다. 앞으로 더욱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교회에 알리며, 그들에게 받은 위로를 곱절로 되돌려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홍윤경 부장 / 영등포산업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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