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목사와 담임목사
[ 기고 ]
작성 : 2021년 03월 30일(화) 15:25 가+가-
필자는 일산예일교회를 33년간 목회하고 바로 2년여 전인 2018년 말로 은퇴한 비교적 새내기 원로목사이다. 게다가 좀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시무기간 대부분 30여 년 동안 원로목사님(2015년 별세)을 모시고 사역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무지개 빛깔만큼이나 다양하고 힘든 소명의 길을 걸어온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양쪽 입장에서 보고 느낀바가 남다를 것 같아서 이 글의 주제를 잡아 보았다.

첫째, 필자는 비교적 행복한 원로목사라고 자평하며 감사하고 있다. 평생을 바쳐 목회해온 목사가 마지막까지 성도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가는 것만큼 더 보람되고 위로가 되는 일이 또 있겠는가. 주일예배는 본교회에서 비교적 한적한 2부 예배(A.9:00)를 참석하고 그 외의 예배나 새벽기도는 사택에 기도방을 정하고 스스로의 영성을 이어가고 있다. 약 3개월마다(다섯 번째 주일) 주일낮예배 설교로 성도들에게 근황을 알리며 은혜를 나누고, 격주로는 본교회 선교부 후원으로 자립대상교회들을 순회하며 설교하고 후원헌금을 전달하며 위로와 격려사역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연 2회 해외 순회선교사역을 후원 받고 있고 그 외 여유시간들은 교회 지원으로 가까운 곳(주교동)에 마련한 '산막쉼더'에서 텃밭과 유실수를 가꾸며 영적 힐링의 시간들을 갖고 있다.

둘째, 바람직한 원로목사의 자세를 묻는다면, 우선, 공동운명체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평안하고 담임목사의 사역이 평탄해야 자신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평안할 때보다 물결이 일 때 원로목사의 처신이 중요하다. 불만을 느끼는 저기압이 원로목사 주변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원로목사는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담임목사를 후원하고 그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교회와 자신을 위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간여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간격이 있는데 하물며 배워온 과정과 세대가 다른데 어찌 내 맘에 쏙 들 수 있겠는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가정의 곡간열쇠를 맏겼으면 집안이 거덜날 상황이 아니라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시행착오를 거쳐서 스스로 일어서는 과정을 지켜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따라서 담임목사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거나 난관에 처했을 때 먼저 원로목사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요 우군을 얻는 길이다.

셋째, 바람직한 담임목사의 자세를 묻는다면, 한국교회 안에 담임목사와 원로목사가 갈등을 겪다가 모두 불행해지고 성도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교회들이 다수 있다. 목회는 어차피 담임목사가 한다고 볼 때, 여기서 담임목사가 성공적인 목회를 위해 선택해야 할 요점은 무엇일까. 우선, 원로목사의 목회비전과 업적들을 계승발전시킬 것인가, 지우기에 힘쓸 것인가. 필자도 담임목회 초반에 원로목사님의 흔적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나의 그림을 그려보려는 성급한 유혹에 빠졌다가 크게 후회한 적이 있지만, 이러한 목회적인 것뿐 아니라 시설물이나 인적청산까지 하고 싶은 유혹은 많이 겪는 일들이다. 그러나 이 유혹에서 실패하면 전통 있는 교회에서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생각해 보라. 수 십여 년의 목회여정에서 오늘날의 교회를 이루어 오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미운 정 고운 정들이 서려 있으며 얼마나 많은 경험과 교훈들이 함축되어 있겠는가. 그 업적들을 존중하며 계승 발전시킬 때 성도들은 안정된 상황에서 성장해갈 것이고 그것은 내 목회현장에서 든든한 보너스가 되고 원로목사와의 관계는 아름다워질 것이다. 다음으로, 원로목사를 오늘을 있게 해준 영적 아버지로 볼 것인가, 부담스런 존재로 볼 것인가. 필자가 모셨던 원로목사님은 성격이 매우 급하신 분이셨다. 목회 전반을 간섭해야 마음을 놓으셨고 주일마다 축도를 위해 앞장서 강단에 오르시곤 했다. 필자가 오죽 힘들었으면 도망칠 궁리를 여러 번 했겠는가. 그 때마다 응답으로 주신 성령의 음성은 이런 것이었다. "규모가 있는 교회에는 대부분 원로목사가 있다. 그의 존재가 부담스러우면 개척교회를 해라. 긴 세월 고난의 길을 면제 받았다면 그 정도의 섬김을 부담스러워 해서야 되겠느냐?" 이러한 깨우침의 음성은 천둥치는 소리로 들렸다. 그 후로 내가 겪었어야 할 숱한 시험거리와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배고픔의 고통을 대신 감당해 주신 아버지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대해 드렸더니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필자를 대하는 원로목사님의 표정이 달라지고 관계는 몰라보게 좋아졌을 뿐 아니라 간섭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나중에는 교회와 담임목사의 충실한 홍보대사가 되어 주셨다. 담임목사의 목회적 역량이 모자랄 때 원로목사의 존재는 부담스러워지고 교회를 풍요롭게 이끌어 갈 때 원로목사는 그림자로만 여겨지는 든든한 후견적 아버지로 존재하는 것이다.

넷째,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아름다운 공존은 성도들을 행복하게 한다. 필자가 모셨던 원로목사님은 80세를 넘기실 즈음까지 가끔 축도를 하셨는데, 다리에 힘이 없어 강단 계단에 오르실 때면 으레히 담임목사였던 필자의 부축을 받아 오르시곤 했다. 40여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그 때 그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 중직자들이 많다. 지금이야 교회 안에 공간들이 많이 있지만 그 당시 비좁은 교회당 아래층에 원로목사실이 있어서 이의를 제기하는 당회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이라도 그곳에 들르셔서 과거를 회상하며 소속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서 이견을 설득하며 유지해 드렸다. 그리고 별세하실 때까지 당회원들과 교역자들을 대동하고 신년 세배와 병문안을 계속 했다. 지난 2015년 별세 하셔서 온 성도들이 모인 교회 본당에서 천국환송예배를 드렸고, 사모님은 그 후 3년이 지난 2018년에 본인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담임목사의 품에서 눈을 감으셨다. 이러한 경험들을 이야기 하는 것은, 필자는 당연한 일로 여기고 해드린 것뿐인데 오늘날에 와서 보니 그 흐름들이 고스란히 필자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정에 부모와 자식이 있다면 교회 또한 영적 가정이 아니겠는가.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 장수하는 복을 주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은 그런 축복의 대(代)가 교회에서도 이어지기를 원하고 계실 것이다.

류우열 목사 / 일산예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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