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와 국제기독교협의회(ICCC)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작성 : 2021년 03월 18일(목) 10:20 가+가-
<완>교회 연합과 일치 논쟁

WCC 초대 사무총장 후프트(좌)와 ICCC를 창립한 매킨타이어(우).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20세기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두 개의 국제기구가 공식 출범했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와 국제기독교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가 그것이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소위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으로 인해 그리스도교 안에서 보수와 진보의 격렬한 갈등과 분열이 야기됐다.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이러한 대치와 격돌이 유럽까지 급속도로 확산되자, 그리스도교 내에는 분열의 폐단을 극복하고 연합과 일치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해서 교회연합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시작됐는데, 이조차도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를 극복하진 못했다. 세계교회협의회와 국제기독교협의회로 나뉘어 탄생한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 국제적인 두 조직의 통합을 거쳐 암스테르담에서 창립됐다. 1925년 스톡홀름 대회부터 활동을 시작한 '삶과 봉사(Life and Work)'와 1927년 로잔 대회에서 출발한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가 각자 독립적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로 통합된 것이다. 여기에 1910년 에든버러선교대회로부터 시작된 국제선교사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가 1961년 동참하고, 이어서 18세기 주일학교운동에 기원을 둔 세계기독교교육협의회(World Council of Christian Education)가 1971년 가세함으로써 세계교회협의회는 사회참여, 교리, 선교, 교육을 포괄하는 명실상부 에큐메니칼 국제기구로 자리를 잡게 됐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 암스테르담 1차 총회를 시작으로, 1954년 미국 에반스턴, 1961년 인도 뉴델리, 1968년 스웨덴 웁살라, 1975년 케냐 나이로비, 1983년 캐나다 밴쿠버, 1991년 호주 캔버라, 1998년 짐바브웨 하라레, 2006년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그리고 2013년에는 대한민국 부산에서 10차 총회를 가졌다. 2022년 8월 31일~9월 8일에는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계를 화해와 연합으로 인도하신다'를 주제로 11차 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1948년부터 1966년까지 초대 사무총장으로 수고한 비셔트 후프트(W. A. Visser't Hooft)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장상 박사가 아시아지역의장이자 공동의장 중 한 명으로, 배현주 박사가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국제기독교협의회(ICCC)

국제기독교협의회는 칼 매킨타이어(Carl McIntire)의 주도로 세계교회협의회에 반대하기 위해 창립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킨타이어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암스테르담에서 1948년 8월 22일 창립총회를 개최하는 데 대항하기 위해 같은 도시, 같은 해, 열흘 가량 앞선 8월 11일 국제기독교협의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매킨타이어가 1948년 창립 때부터 2002년 96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무려 54년 동안 국제기독교협의회 의장이었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일인체제로 운영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제기독교협의회는 2005년 대한민국 강원도 횡성에서 17차 총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최근 2020년 1월에는 칠레 푸에르토 몬트에서 20차 총회를 가졌다.

1983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세계교회협의회 6차 총회가 열렸는데, 이때도 매킨타이어는 바로 그 기간, 그곳에서 세계교회협의회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강연을 했다. 그는 세계교회협의회가 성서비평을 받아들여 성경의 권위를 훼손했으며, 포괄주의와 다원주의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가 러시아 침례교회를 회원으로 받아들이면서 공산주의와 손을 잡았고, 심지어 구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와 은밀한 거래를 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매킨타이어의 일방적인 주장은 이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해 오해하고 편견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는 "만일 세계교회협의회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국제기독교협의회가 생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국제기독교협의회가 세계교회협의회의 대항조직임을 숨기지 않았다.

국제기독교협의회와 한국교회의 연관성을 보자면, 195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3차 총회에 박윤선과 한상동 등 고려신학교 관계자들이 참관자로 참석했고, 1959년 한국장로교회가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될 때 매킨타이어를 비롯한 몇 사람이 방한하여 반(反)세계교회협의회 강연활동을 펼치며 합동 측을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친 근본주의적 분리주의에 반대하는 청원들이 이어지면서 한국장로교 고신 측과 합동 측도 1961년 제46회 총회에서 각기 국제기독교협의회와의 우호관계를 단절하는 결의를 했다.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를 향하여

325년 니케아에서 작성되고,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확정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교회를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라고 고백한다. 교단마다 신학, 교회정치, 의식이 다르고, 심지어 같은 교단 안에서도 예전과 질서가 다른 교회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한 분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하나됨은 다양성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화해된 다양성'을 포함한다.

16세기 복음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거짓과 불의에 항거하며 태동했던 프로테스탄트가 역사 속에서 분열의 죄를 지은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분열의 원인이 진리 문제가 아니라 교권 다툼이나 심지어 이권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20세기에 나타난 교회연합운동은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그 노력마저도 진보와 보수라는 인식의 틀에 갇혀 분리된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앞에 놓고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교회의 하나됨은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자, 동시에 복음 선교를 위한 기초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진리를 위한 항거였다면, 21세기 교회개혁은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연합과 일치여야 하지 않겠는가?

박경수 교수 / 장신대

※ 이번 회를 끝으로 '논쟁을 통해 본 교회사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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