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와 강제가 없는 이유
[ 목양칼럼 ]
작성 : 2021년 02월 24일(수) 09:59 가+가-
어느 날 한 성도가 찾아와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목사님! 우리 교회도 빡쎄게 훈련하고, 들들 볶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교회에 강제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행사나 사역에서도 강제로 참석하게 하거나 의무적으로 하지 않는다. 교회에 새로운 사람이 오면 자기 손으로 등록카드를 쓰기 전까지는 그냥 둔다. 어떤 분은 1년 이상을 예배 드리다가 등록하신 분이 있는데 그분도 비슷한 말을 했다. "목사님! 이렇게 예배 드리면 등록하라고 말씀하실 만도 한데 왜 하지 않으세요?" 우리 교회는 헌금도 무기명이다. 물론 연말정산을 위해 헌금봉투 뒤에 주민번호를 쓰지만 헌금내역은 전산에 입력하는 간사만 알 뿐 필자는 모른다. 한번도 내역을 본 적이 없고 사실 보고 싶지도 않다. 몇 년 전에는 구역편성을 하면서 제직 중에서 구역장 신청을 받았는데 개인 사정으로 많이 신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해 동안 구역 없이 진행하려고 했다. 물론 마지막 날 신청해서 편성이 되기는 했지만.

우리 교회에 강제나 의무가 없는 이유는 복음은 누림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육이나 훈련을 받을 때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의무와 규정이 있지만, 그것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복음으로 사는 사람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스스로 움직인다. 바로 여기에서 세상 가운데 교회의 존재이유가 나온다.

<b>복음으로 사는 사람은 스스로 움직인다</b>

<b>교회는 복음을 기초로 세워지는 곳</b>

교회가 교회 밖 조직과 다른 가장 근본적인 것은 '기초'이다. 교회 밖 기관과 조직은 '이해관계'를 기초로 세워졌고, 교회는 '복음'을 기초로 세워졌다. 교회 밖에서 열심히 하는 이유는 나에게 이익이 있고, 손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내가 열심히 한다고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없다. 예배를 열심히 드린다고 천국갈 때 1등석에 앉혀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헌금을 많이 한다고 천국에서 제일 좋은 집을 예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교회생활은 왜 하는 것일까? 교회생활을 통하여 주어지는 축복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동시에 '나'라는 '존재의 변화'이다. 인간은 이해관계가 있는 곳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대가이기 때문이다. 회사생활이 사람들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이유는 나는 그렇지 않은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 개념이 없는 사람인데 정시에 출근해야 하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일이 더 중요하고, 게으른데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고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내 이익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인간의 변화는 이해관계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다. 이 땅에 이해관계가 없는 곳은 교회뿐이다. 물론 교회를 이해관계로 만들 수 있다. 교회활동을 잘하는 사람에게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고, 장로와 권사의 직분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성도들은 교회에서도 가면을 써야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지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은 자신의 존재가 변화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며 성도들이 복음 앞에서 응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응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그것을 내가 못한다. 조급해하고, 불안해하고 염려한다. 돌아보면 그러한 존재가 변화하는 교회공동체를 세워가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내 자신이다. 나는 오늘도 이 싸움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고형욱 목사 / 꿈꾸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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