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양 인문학은 항상 그리스-로마에서 시작할까?
[ 인문학산책 ]
작성 : 2021년 02월 09일(화) 08:53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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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많은 전공 중 교양학(liberal arts) 하면 대체로 文史哲에 해당하는 공부 정도로 여긴다. 틀린 말은 아니나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10세기 우리나라로 하면 고조선시대에 이르는 뿌리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 시기에 교양과목을 듣는 수강생은 없었겠지만 왜 이 시기를 서양 인문학의 출발로 보는가?

인문학(humanites)이란 말은 원래 인간을 가리키는 라틴어 후마누스(humanus)에서 파생한 말이다. 인간은 물(物)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다.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언어이다. 인간처럼 ‘언어로 이해하고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로 사고하는’ 존재는 없다. 최근 연구 성과는 동물도 언어 사용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밝혀냈다. 영장류 중 비교적 지능이 높은 일본 원숭이는 26가지 정도의 음성기호로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이는 본능적으로 수많은 경험을 통해 습득한 소리일 뿐 언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와 달리 인간의 언어는 모음과 자음을 결합한 분절음의 무수한 조합을 통해 세상을 보다 정교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의 선언은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언어를 허락하셨다’라고 읽으면 어떨까?

최초의 드라마 작가, 호메로스

인간의 언어는 크게 말과 글로 구분할 수 있다. 말은 본래적이라면 글은 말 보다 훨씬 더 뒤에 생긴다. 훈민정음 이전에 우리나라에 말은 있었지만 글이 없었던 것처럼 글은 필요에 의해발전했다. 글이 없던 시기의 말은 오직 기억을 통해서만 보존되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인간의 기억은 신뢰할 수 없는 저장 공간이었다. 말을 저장하기 위해 글을 발명하여 파피루스라는 종이에 적기 시작한다. 글은 기억을 위한 아주 좋은 말의 저장 수단이었다.

기원전 10세기 그리스에는 탁월한 이야기꾼 호메로스가 있었다. TV, 인터넷이 없던 시대 그가 전해 준 이야기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사실 호메로스의 두 작품은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400년쯤 전인 기원전 14세기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구두로 전한 영웅의 이야기, 감동적인 비화(祕話)들이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지려 하자 호메로스는 이를 종합 편집하여 더 재밌게 드라마화했다. 마침 그리스어라는 글이 생겼고 이를 적을 수 있는 파피루스가 충분히 확보되었기에 가장 재미있는 인기 드라마를 기록할 수 있었다.

두 작품을 서사시라고 하는 이유는 한 줄 한 줄 시의 형태로 낭송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읽은 시를 다 모아보니 두 작품 각각 1만 행이 넘었다. 작품 하나를 완주하려면 쉬지 않고 읽어도 사흘이나 걸렸다. 호메로스 사후 약 300년 후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서양 철학의 관심을 인간으로 돌려놓았다면 호메로스는 말로만 전해지던 이야기를 글로 남김으로 서양 문학의 아버지가 된 셈이다.

고전(古典, classic)을 왜 읽어야 하나?

철학은 소크라테스, 문학은 호메로스에서 시작되었다고 인문학을 위해 헬라어 공부를 다시 해야 하나?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가 그리스 신화를 라틴어로 바꾸었으니 라틴어까지 공부해야 하나? 해도 나쁠 것은 없지만 서양 고전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전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던지는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이다. 단순히 “그들의 사상”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통해 오늘 여기 “우리의 삶”을 진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나와 너, 타자로 둘러싼 세계를 새롭게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다면 고전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적 자양분이다.

고전은 영어로 classic,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단어는 함대(艦隊)라는 뜻으로 배를 가리키는 클라시스(classis)의 복수형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로마의 부호들은 배 몇 척 정도를 능히 제국에 헌납했다. 물론 징세 제도가 있었지만 군함에 대해서는 세금이 아닌 기부를 통해 충당했다. 오늘날로 하면 국세청으로부터 모범 납세자상을 받을 법한 부호들을 클라시쿠스라고 불렀던 것이다.

반면에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을 제국을 위해 바쳤다. 라틴어로 자식은 프롤레스(proles)였고 군함이 아닌 자식을 바치는 무리를 프로레타리우스(proletarius)라고 불렀다. 이 단어에서 빈곤 노동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단어가 파생된다. 로마의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 모든 군필 남성은 프로레타리우스인 셈이다. 그렇다고 로마의 귀족들이 배만 헌납하고 가난한 자들의 아들만 전쟁에 보낸 것은 아니다. 귀족들은 사회와 제국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전쟁에 참전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사재를 털어 공공시설을 신축 보수하기도 하였다. 클라시쿠스의 의미는 로마 이후 점점 더 확장되어 여러 가지 인간 실존의 위기 상황에서 정신적 힘을 주는 모든 작품을 ‘클래식’으로 부르게 되었다.

믿지 않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처음부터 성경을 믿으라고 강요하면 심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오히려 성경은 서구 문명의 가장 귀한 고전 중의 고전이니 이 책을 통해 서양 사상의 풍성함을 한 번 맛 보라고 권유한다. 더 나아가 인생의 어려움에 닥쳤을 때 성경 한 구절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해주면 학생들의 반응이 훨씬 더 수용적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클래식을 처음 접한 일본은 이 단어를 고전(古典)으로 번역했다. 예부터 내려오는 귀한 책이란 뜻이다. 특히 典은 상형문자로 책상 위에 두루마리를 올려놓은 형상이다. 지금 내 책상 위에 있는 책이라면 읽은 지 오래되어 먼지가 쌓일 수 없다. 늘 곁에 두고 읽어서 내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 인간의 삶에 무수한 감동과 교훈을 주는 책이 고전이라면 하물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고전 중에서도 으뜸이다.

박원빈 목사(약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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