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선교에 눈뜨다
[ 땅끝편지 ]
작성 : 2021년 02월 02일(화) 10:17 가+가-
체코 이종실 선교사4

2015년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서 열린 얀 후스 순교 6백주년 기념식.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사회는 통일에 대해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은 교회에까지 미쳐, 교회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대답을 찾지 못한 기독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종종 목격하면서 필자도 미래의 목회자로서 이 주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1983년 신대원에 입학할 당시 홍성현 박사의 '공산권 선교전략' 강의가 개설돼, 기독교와 이데올로기란 주제가 단순히 한국교회만의 관심이 아님을 배우게 됐다. 여러 사례들이 있었지만, 특히 체코슬로바키아 교회의 '무신론자들을 위한 복음'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이것은 내가 '무신론자를 위한 선교'라는 소명을 자각하게 된 계기가 됐고, 기독교 인구가 가톨릭을 포함해 10%에 불과한 체코슬로바키아가 나의 관심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선 1958년에 시작된 기독교 평화 컨퍼런스를 통해 크리스찬과 무신론자들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체코슬로바키아 국립대학인 프라하 카렐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로서 당시 사회주의 체제의 유물론 핵심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르다브스키는 이 대화의 영향을 받아 1967년 '하나님은 완전히 죽지 않았다'라는 책을 쓰게 됐고, 역시 같은 대학교 철학과의 다른 무신론 학자인 마호베츠는 '무신론자를 위한 예수'를 1972년에 독일어로 저술했다. 이 책을 1982년 한국에서 '무신론자가 본 예수'라는 제목으로 안병무 박사가 번역 출간했다. 기독교에서 이 대화를 주도한 인물이 한국에 '로마드카'로 알려진 '흐로마드카'이다. 그는 소련의 레닌상까지 받을 정도로 사회주의 체제로부터 호응을 받았지만, 1968년 '프라하 봄' 사태 땐 소련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판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프라하 봄 사태 다음 해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89년 벨벳혁명으로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새로운 정권이 체코슬로바키아에 세워졌다. 곧바로 과거 공산 독재의 역사청산이 광범위하게 시작됐다. 무신론자들과의 대화를 기독교 친공산주의자들의 조작으로 의심하는 교계 학자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그 대화를 주도한 중심 인물인 흐로마드카에 대한 조사를 수년에 걸쳐, 모든 개인 서신들까지 상세히 살피며 학문적 검증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가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당이나 비밀경찰 부역자라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조사 연구는 '가장 진보적인 교회 목사' 제목의 400쪽에 이르는 학술도서로 최근에 발간됐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흐로마드카의 무신론자들과 대화가 사상논쟁 차원이 아닌 자기 교회의 15세기 보헤미아 종교개혁 역사를 토대로 신앙적 차원에서 이뤄진 점이다. 흐로마드카는 개혁자들의 복음에 대한 이해에 기반해서 무신론자들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이해에 토대를 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선교사가 프로테스탄트 복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무신론적 이데올로기를 비롯해 다른 신앙들을 배척하지 않고 대화하며 오히려 복음을 변증하고 증언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은 세계 교회사 교과서들이 소위 종교개혁 이전의 종교개혁으로 몇 줄 언급하며 지나쳤듯이, 세계교회가 별로 주목하지 않은 15세기 보헤미아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2015년 보헤미아 종교개혁자 얀 후스 순교 6백 주년을 앞두고 나는 한국교회에게 우리의 동역교회이며 믿음의 형제들의 신앙유산을 소개했고, 우리 총회에서 40여 분의 대표들이 이 기념 행사에 참석해 체코교회를 격려하고 함께 기념하면서 보헤미아 종교개혁의 의의와 그들의 신앙유산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 분들을 통해 얀 후스의 종교개혁 역사가 한국교회에 처음으로 널리 소개됨으로써 한국교회와 선교지의 현지교회는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종실 목사 /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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