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역량의 자원화·이중직 연구 이뤄져야
[ 1월특집 ]
작성 : 2021년 01월 27일(수) 08:22 가+가-
감염병 상황에서 교회 (5)자립대상 목회자들을 위한 대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교회적 측면에서 보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대상들이 자립대상교회이다. 우리 교단의 자립대상교회의 존재 기반 중의 하나는 교회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한 교회연결고리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에 직면하면서 이 연결고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연결고리의 문제의 핵심은 돕는 교회들의 재정 약화와 자립대상교회의 재정약화 그리고 특별히 대도시 중심의 자립대상교회 수의 증가이다.

따라서 우선은 일차적으로 교회동반성장위원회가 주도하는 자립화 전략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 있어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은 일방성을 넘어서서 다자간의 협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논의의 시급성은 틀림없으나 동시에 논의의 결과물에 대한 인내를 전제하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에서 논의에 대한 참여의 다양성과 과정에 대한 투명한 절차와 공개성을 확보한 과정이 필요하다. 적어도 졸속적인 처리는 피해야 한다.

두 번째는 자립대상교회를 향한 목회적 지원의 길이 열려야 한다. 한국 교회, 특별히 우리 교단이 가진 잠재력과 실제적 역량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격언처럼 우리 교단의 역량을 어떻게 자원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자원이 자립대상교회와 만나는 길을 열어야 한다. 지역 거점 자원은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자립대상교회를 단순한 재정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목회적 차원의 지원그룹이 필요하다. 지금 코로나 상황에서 예배, 교육, 그리고 공동체 유지 등을 위한 기술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원 가능한 교회들의 네트워킹과 헌신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 자원들이 자립대상교회와 연결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지도의 관점이 아닌 공감과 지원의 관점에서 준비와 실행이 필요하다.

동시에 자립대상교회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자립대상교회 간에도 교회적 연대와 목회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물론 이 연대를 돕는 지원체계 또한 갖추어져야 한다. 목회자들의 고충 나누기, 목회적 자원 나눔, 프로그램 공유, 여러 교회 간의 연합행사 등 다양한 방식의 협력을 이루고 여기서 제시된 과제들을 지원그룹들과의 연계를 통해서 해소해 나가는 선순환의 고리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자립대상교회나 그렇지 않은 교회가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함으로 하나의 교회로 세우신 주님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교회의 다양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토양의 다양성은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이에 반해 교회는 이런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교회 안에 여러 소리가 있는 것 같으나 현실로 만나는 교회는 획일성의 범주를 넘지 못하는 것 같다. 복음은 시대를 넘어선 구원의 소식이고 하나님 나라의 선포이지만 동시에 시대 속에 존재하고 그 존재하는 교회는 시대성을 반영해 왔다.

그런 면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교회들의 등장은 고무적이다. 반드시 검증되어야 하지만 다양한 실험들에 대하여 응원을 보내고 지원하면서 마음과 생각과 신학을 나누어야 한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다양한 교회의 길을 자립대상교회 스스로도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시도해볼 만하다.

특별히 목회자 이중직과 관련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교단에서 자립대상교회라고 정의한 범주 밖의 교회 중에도 실제적으로는 열악한 재정구조를 가진 교회들이 허다하다. 모든 교회가 하나의 복음의 기초위에 세워진 공동체임이 틀림없지만, 복음을 보여주는 방식에서는 자신들만의 독특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은 사회 문화적 상황이나 교회 상황에서 필연적인 과제이다.

네 번째는 이중직에 대한 전향적인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논의해 왔던 연구결과들도 있고 현실적인 상황도 있다. 현실을 외면하기보다는 문제가 있는 부분들을 보완해 가며 시행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먼저 '이중직'이라는 용어의 적절성부터 검토해야 한다. '이중직'이라는 용어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함의하고 있고 범주화하는 측면도 있다. 목회자를 '이중직'과 그렇지 않은 목회자를 구분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목회의 한 방향, 혹은 현상 중의 하나로 이해하는 방향에서 용어를 정리하고 계층화하는 우를 극복해야 한다. 생계형 이중직이란 용어도 사용되고 있으나 이중직이라는 용어가 목회자나 교회에게 열등감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 훌륭하게 이런 상황 속에서 훌륭하게 길을 열어가는 목회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응원함과 동시에 건강한 길로 걸을 수 있도록 함께 해 주며 그런 사례들이 다음 세대의 목회자들에게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도록 신학대학에서부터 준비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는 자립대상교회를 만들어 내지 말아야 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목회자 수급을 조정해야 측면과 또 하나의 측면, 즉 다양한 현장에서 목회자가 사역할 수 있도록 신분 유지 규정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교회 안에서만의 목회가 아닌 다양한 신분을 가진 목회자가 목사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두 가지 내용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하나는 에베소서의 말씀이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5-16) 모든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머지 하나는 한 신학자의 심정이 담긴 말이다. "미래세계에 신학전공과 목회는 생계와 무관하게 할 수 있는 선택이어야 좋다. 신학전공과 목회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앞으로 더 바늘귀가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학부에서 신학 전공하려면 복수전공을 해라." 아프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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