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세상에서 '장물아비' 인생을 살다
[ 현장칼럼 ]
작성 : 2021년 01월 28일(목) 17:28 가+가-
예수의 비유 가운데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 달란트 비유, 낙타와 바늘귀 비유' 등 부와 재물에 관한 이야기가 여럿 있다. 예수는 이 비유들을 통하여 이자와 이윤 등 불로소득과 그 불로소득의 독점과 쌓음에 대한 사회적 진실을 밝히려고 애쓴다. 그럼으로써 예수는 '현실세계 부와 재물의 밑바탕'을 드러내고 '부와 재물의 쌓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예를 들면 '어리석은 부자 비유'에서 어떤 부자의 부와 재물은 불로소득이다. 어떤 부자가 독점하고 쌓아 올린 부와 재물이야말로 맘몬, 자본세상에서 '부자의 장물아비 인생 그 자체'이다. 그런데 예수의 비유들의 행간 속에는 비유이야기 내용과 흐름에 대한 청중들의 불평불만, 반발하는 웅성거림이 숨어 있다. 왜냐하면 예수시대 유대인들의 종교심성 속에는 '부와 재물에 대한 독점과 쌓음을 사회적 죄악으로 여기는 야훼신앙 전통'과 더불어 '부와 재물을 독점하고 쌓는 것을 하나님의 복으로 여기는 맘몬신앙'이 함께 뒤엉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서가 이야기하는 '부와 재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복음서는 '부 또는 재물'에 대하여 '크레마타'라는 헬라어 용어를 사용한다. 이 용어는 단수형 낱말 '크레마'에 대한 복수형이다. 그런데 '크레마'는 '크라오마이: 쓰다, 필요로 하다'라는 헬라어 동사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복음서에서 사용하는 '크레마타'라는 헬라어 용어의 문자적 의미는 '쓰임들, 필요들'이다.

또 여기서 '크라오마이'라는 헬라어 동사의 원형은 '크라오:빌리다'이다. 따라서 '크레마타'는 사람의 '쓰임들과 필요들'로써 다른 사람들로부터 빌려온 것들이다. 그러므로 복음서에서 '부와 재물'의 실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빌려온 쓰임들과 필요들을 나만을 위해 독점하고 쌓아놓은 것들이다. 한마디로 부와 재물은 자본세상에서 '장물'에 다름 아니다.

이 밖에도 복음서는 '예수 따름을 거부하는 부자청년 사건'에서 '크테마타: 사유자산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헬라어 용어는 '크타오마이: 사유하다'라는 동사와 연결되어 있다. 부자청년은 많은 부와 재물들을 정당하고 마땅한 사유자산들이라고 굳게 믿는다. 부자청년이 율법과 모든 계명들을 성실하게 다 지키며 많은 사유자산들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복음서는 부와 재물에 대한 또 다른 헬라어 용어를 사용하는데 '휘파르콘타: 독점사유자산'이라는 낱말이다. 이 낱말은 '휘포: ~ 아래+아르코 지배하다'라는 동사와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부자청년을 비롯한 부자들에게 부와 재물이란 자기 손아래 움켜쥔 독점사유자산들이다. 누구도 이렇다 저렇다 시비를 걸 일이 전혀 아니다.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지배체제에서 부와 재물의 의미는 복음서 부자청년의 경우와 닮았다. 한마디로 21세기 사유자산제도는 모든 자유주의 국가들의 사회, 경제 질서이고, 자연법 제도이며, 초자연적으로는 '하늘에서 내린 하나님의 복'이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 없이 뚜렷하게,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의 하나님나라'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예수의 하나님나라에서 부와 재물은 '옵페일레마: 빚'이라는 헬라어 용어로 표현된다. '옵페일레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빌려온 '쓰임과 필요'에 대한 '책임과 의무'이다. 예수는 부자청년에게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해 철저한 회개를 요구한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러므로 이제, 예수시대에서나 21세기에서나 사람은 누구라도 자기 쓰임과 필요를 다른 사람들의 노동과 달란트로부터 빌려올 수밖에 없다. 21세기 금융자본경제 지배체제에서 조차 신앙인이든, 아니든 누구라도 자기 쓰임과 필요 가운데서 얼마를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러할 때 복음서는 '안타포디도미: 맞먹는 것으로 되돌려 주다'라는 헬라어 동사를 사용한다. 쓸데없는 것, 모자라는 것, 부스러기로 되돌려 주는 시늉만 하는 것은 예수의 하나님나라에서 올바른 회개라고 할 수 없다. 예수의 하나님나라에서는 자기 쓰임과 필요에 맞먹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쓰임과 필요에 맞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서로의 노동을 통해서, 직업을 통해서, 달란트를 통해서.

김철호 목사/마당교회·민생네트워크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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