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 주간논단 ]
작성 : 2021년 01월 20일(수) 10:00 가+가-
"정인아 미안해"

새해아침부터 SNS를 통해 확산되었던 챌린지의 한 줄이다.

정인이는 생후 16개월의 입양아로 양부모의 지속적인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10월 13일, 입양된 지 271일만에 하늘나라로 떠난 아이다. 사망 당시 언론을 통해 보도되긴 했으나 지난 2일 모 방송의 사사프로그램에서 정인이의 사망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이 사건이 공분을 사는 것은 16개월된 아이에게 가해진 끔찍한 폭력과 세 차례 신고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러나 학대로 인한 아동 사망사건은 정인이 이전에도 계속 있어왔다.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칠곡 계모 사건(2013년 8월 14일, 8세 여아)과 울산 계모 사건(2013년 10월 24일, 초2 여아), 정인이와 유사 케이스인 울산 입양아 사건(2014년 10월 26일, 25개월 여아) 그리고 추운 겨울날 락스 등으로 아이를 학대했던 평택 계모 사건(2015년 2월 1일, 7세 남아), 친 딸을 암매장 했던 전주 친부사건(2017년 11월 18일, 5세 여아), 여행가방에 아이를 가두어 사망케 한 천안 계모 사건(2020년 6월 1일, 9세 남아) 등 학대로 인한 사망사건은 계속 있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16명이었던 학대 아동 사망 수가 2019년에는 42명으로 5년 사이에 약 2.6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9년 기준 42명의 사망 아동 중 7세 미만의 아동이 39명으로 전체 아동의 92.9%였다. 이 중 1세와 1세 미만의 영아가 각각 5명(11.8%)과 19명(45.2%)으로 전체 사망아동의 절반을 넘는 57%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사망 아동의 가해자는 친부모가 22명(52.4%)으로 1세와 1세 미만의 어린 영아들 대부분이 친부모의 학대로 사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사망통계에는 수사기관을 통한 신고 및 진행된 사건 등이 제외되어 있어 전체 아동 사망 사건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정인이와 같은 아이들이 여전히 존재할 것으로 유추되는 부분이다.

지난 13일 정인이 사건의 첫 재판이 있었다. 온 몸이 골절되고 췌장까지 파열된 채 고통 속에 죽은 아이가 그 증거임에도 양부모측 변호사는 훈육차원의 체벌이었고 실수로 떨어뜨린 적은 있으나 고의성은 아니기에 '아동학대치사'를 인정할 수 없으며 검찰의 '살인죄' 적용은 더욱 인정할 수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죽음의 폭력을 고의성 없는 체벌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프란시스코 페레Francisco Ferrer)는 그 말의 의미는 어떠한 이유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것이다. 체벌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학대는 또 다른 학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동의 권리와 인권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높아져가고 있다. 창녕(2020년 5월 29일)과 여수(2020년 12월 1일) 등의 사건에서 보여지듯이 아동학대에 대한 이웃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대를 신고하는 시민의식도 함께 높아졌다. 이번 정인이 사건에 이르러서는 함께 공분하며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반면 교회 내에서는 아동의 권리신장과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사업이나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이번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교회 내 공식적인 전문가 그룹의 부재로 기독교 정체성에 기반한 입장 표명도 어려웠다. 더구나 정인이의 양부모가 목회자 가정의 자녀로 밝혀지면서 교회로 시선이 모아지고 있는 이 때에 그 아쉬움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동안 교회는 사회 약자들에 대한 다각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그들을 지지하고 지원해왔다. 그러나 사회의 최약자인 아동 인권에 관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꾸짖는 제자들을 보시고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눅 18:16)고 말씀하셨다. 교회가 사회적 약자인 어린 아이들에게 가져야 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교회의 현실을 통감하고 지금이라도 아동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교단의 105회 주제는 '주여 이제 회복하게 하소서'이다. 주제 말씀인 에스라 1장 1절에 따르면 모여든 큰 무리 중 '어린아이'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다음세대'라는 키워드를 사용하는 새해설교도 많았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다음세대가 처해있는 아동의 사회 문제를 반영한 프로그램 안내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회는 이제라도 아동학대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교단과 노회, 개교회가 참여할 수 있는 아동학대 예방부터 아동지킴이까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작고 소중한 생명을 지켜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학대와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회는 아동의 사회문제에 책임감을 가지고 동참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선교 과제이다.



강은숙 목사/모퉁이돌 아동복지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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