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케냐 사역 읽으며 하나님 마음 알게 돼"
[ 창간75주년 ]
작성 : 2021년 01월 12일(화) 16:40 가+가-
아카이브 줌인 … 이지은 씨, "기사 통해 만난 아버지의 삶 큰 감동"

케냐 이은용 선교사 부부와 딸들. 맨 좌측이 필자 이지은 씨.

아버지 이은용 선교사는 1991년, 32세의 나이로 아프리카 선교를 시작했다. 셋째 딸인 나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핀란드에서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더 많은 훈련과 공부를 하기 위해 케냐 카프카테트 선교지를 떠난 지 2년이 지났다. 거기서 나는 지역 목회자를 도와 십대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고, 하루 하루가 정신 없이 바빴다. 그러나 오히려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인터넷이나 교회 안의 다양한 논쟁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확실히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버지가 선교를 시작한 때와 내가 자라온 시기만 비교해도 너무나 다르다. 이제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도 선교사를 받는 나라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때로는 교회조차 인종적, 재정적, 문화적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해외선교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케냐 친구들이 아버지의 사역을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선교사들이 의미 없는 구세주 흉내는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땐 영적으로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문화권 선교는 실제로 어려웠으며, 누구든 오랜 동안 심사숙고하며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기독공보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아버지의 기사를 읽으며 나는 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주권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됐다.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적대감이 증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아버지의 선교 역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는 증언의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전세계의 지체들과 사역의 열매를 나누며,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나도 부르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한 사람이었기에 기사를 통해 만나는 아버지의 삶은 큰 감동을 전해주었다. 특히 기사들을 읽으며 사역자의 능력이 훈련과 전략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사역은 신학, 이념, 의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기사 속엔 항상 그런 노력이 담겨 있었고, '나도 아버지처럼 사역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선교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미소가 선교사의 힘과 능력이었음을 한국기독공보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 배우게 됐다.

하나님의 미소가 역경을 이겨내고, 다른 동역자들을 섬기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

선교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들을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선교사들의 사역은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또한 그들을 위해 어떻게 일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지은 / 케냐 이은용 선교사 삼녀

※ 케냐에서 태어난 이지은 씨가 영어로 보내온 편지를 번역하여 게재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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