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목사가 아버지로 보여질 때
[ 논설위원칼럼 ]
작성 : 2021년 01월 11일(월) 09:44 가+가-
한국인들에게 배꼽이 떨어진 자리의 꼬리표는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 같다. 이미 태어날 때 탯줄이 잘렸으면 우리 모두는 한반도 사람인데, 탯줄이 어디에서 잘렸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필자는 대구에서 목회한 지가 20년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아직도 탯줄이 잘려진 '충청도 목사'란 꼬리표가 따르고 있다. 이 꼬리표를 가지고 타관 땅에서 목회를 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 누가 말했던가?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정들어 살아보려 해도, 동역하고 있는 터줏대감들의 텃새는 만만하지 않았다. 이런 타관에서 필자도 목회를 끝내야 할 마지막 해가 되었다. 지난 20여 년의 목회 현장을 돌아보니, 굴곡 많은 세월이었지만, 순간순간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뿐이다. 20여 년 전, 필자가 서울에서 대구로 임지를 옮길 때, 주변의 동료 선배 목사들이 거의 반대했다. 총회장을 지낸 어른 원로목사를 모신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고심도 컸다. 그런데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필자가 원로목사를 뵐 때, '지식의 나무' 시각에서 보지 않고, '생명나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원로목사를 생명나무 시각에서 뵈니까, 필자가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원로목사를 뵐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목 매인 때도 있었다. 필자가 부임한 후, 얼마 지나 원로목사의 승용차를 바꾸어 드렸다. 투병하시는 원로목사가 병원을 오가기에 편리한 승합차로... 물론 운전기사까지다.

그리고 본교회 사례비를 제외한, 타 교회 집회나 헌신예배에서 받은 사례비는 한 달에 한 번씩 원로목사를 찾아뵙고 절반을 나누어 드렸다. "목사님, 이번 달은 지난 달 보다 수입이 더 좋았어요. 목사님 반 팅합시다." 얼마나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필자의 손을 잡아주던 그 모습이 그리워진다. 그리고서도 필자를 걱정하시면서, "원로목사 용돈 더 챙기려고, 목(喉)을 혹사시키지 말라"는 당부를 들을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성애로 다가왔다. 심지어 다른 교단 목사들로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저 후임 목사는 분명 박맹술 목사의 숨겨놓은 아들이라고요. 성(姓)도 같고요. 아들이 아니면 어찌 저렇게 섬길 수 있겠어요?" 요즘은 그런 소문을 퍼뜨린 목사들과 친해져서 함께 옛이야기하면서 웃는다.

그런데 원로목사는 필자가 드린 용돈을 한 푼도 쓰지 않으시고, 필자의 남매 자녀들이 외국에서 올 때마다, 입학이나 졸업 기념으로, 군 입대 제대 기념이라는 명목으로 다 베풀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렸더니, 할아버지는 그 용돈을 모두 손자들에게 베푼 셈이어서, 서로의 관계는 돈독해지고 신뢰는 더욱 쌓이게 되어 서로를 섬기는 모습이 되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던 교인들도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필자를 대하는 모습도 현저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제 목회 철학은 "생명나무 아래서... (under the tree of life)"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목회 철학을 이어가기 위해 필자는 '눈물과 무릎'의 목회를 이어갔다.

작금의 한국교회 문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가슴이 저린다. 왜 생명나무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판단을 하고 있을까? 조금만 내 욕심을 내려놓고 내 십자가를 지면, 예수님의 십자가나무의 해결 길이 보이는데, 오늘 한국교회가 너무 지식의 나무 열매를 많이 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는 팬더믹 시대의 위기를 맞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이런 재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서 목회적으로 해석해 본다. 너무 지식의 나무 열매를 많이 취한 우리를 생명나무 아래로 인도하시기 위한 뜻이 아닐까? 한때 '한국의 지성'으로 불리면서 일생 지성을 역설했던 교수도 70세가 넘어 예수님 영접하고 호소하지 않던가?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 영성이 바로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나무 열매가 아닐까?

박희종 목사 /대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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