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똥전도
[ 목양칼럼 ]
작성 : 2020년 11월 11일(수) 09:13 가+가-
농사짓는 목사로 살고자 시골에 들어온 지 6년차가 됐다. 하지만 농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농부의 삶이란 하늘에서 울리는 고수의 북소리를 잘 듣고 그 박자에 맞춰 살아가는 삶일텐데, 나는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늘 엇박자를 낸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이 북소리를 선명하게 듣고 있는 사람들처럼, 아니 북소리가 자기 속에서 들리는 사람들처럼 북 장단에 맞춰 춤추듯 자유롭게 살아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은 얼었던 땅이 녹은 줄 알고 모두들 나와서 밭을 갈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마을 이장님이 방송을 한 것도 아닌데 다들 두둑을 만들어 놓고, 또 며칠이 지나면 비닐멀칭이 된 자리에 고추모가 나란히 심겨져 있다. 평생 이렇게 살아오신 마을의 어르신들을 보면 존경심을 넘어 경외감마저 든다.하지만 우리 마을에서 나만 듣는 북소리도 있다.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닭똥을 치우라는 북소리다. 닭똥치우는 일은 양계장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냄새가 환상적이고, 노동 강도도 역대급이기 때문이다. 200마리 닭이 한 곳에서 1년 정도를 먹고 싸면, 20kg포대로 250포대 정도가 나온다. 이것을 포대에 담아 1년 정도 숙성하고 나면 냄새나던 더러운 닭똥은 최고의 거름인 계분(鷄糞)으로 재탄생된다. 계분은 가축배설물 중 비료성분이 가장 많다. 이렇게 귀한 닭똥을 치워줄 사람은 없지만, 가져다주면 싫어할 사람도 없다.

이 사실을 알고부터는 소위 '닭똥전도'를 시작했다. 일년이면 1톤 트럭으로 10대 분량이 나오고, 그 정도면 10~15가정 정도를 닭똥으로 섬길 수 있다. 주변에 항생제와 살균제를 쓰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양계를 하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대부분은 대규모 양계장이어서 퇴비업체가 와서 닭똥을 일괄수거해 가기 때문에 이런 계분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배달까지 해주기 때문에 시골에서 이보다 더 좋은 전도용품은 없다고 자부한다. 이렇게 닭똥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경험상 우리 닭들과 나를 마을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인정해 준다. 그러면 민원 염려도 사라지고, 동시에 내가 하는 목회와 교회에 대한 비호감도는 점점 낮아지고, 호감도는 조금씩 상승하는 것 같다.

일 년에 두 번 하늘고수의 북소리가 울릴 때, 닭똥을 250포대에 담아 배달할 일을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고 피하고도 싶지만, 그것을 받고 감사해 하는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젠 나도 하늘 북소리를 장단 삼아 어색하게나마 어깨를 들썩일 정도는 된 것 같다.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렇게 환상적인 전도방법인 닭똥전도에 동참하려고 왔던 사람들이 두 번 다시는 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닭똥전도가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도 농부가 되어 간다. 목사가 되어 간다. 그리고 사람이 되어간다.

고광진 목사/정산푸른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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