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상황에도 희망은 움튼다
[ 현장칼럼 ]
작성 : 2020년 10월 19일(월) 14:31 가+가-
어느새 마지막 연재다. 그간 필자가 쓴 '예쁜 옌', '행복한 프엉', '건강한 항' 세 편의 연재를 읽으면서 이름 앞에 있는 수식어가 눈에 띄었을 것이다. 우리 교회 가족은 모두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수식어는 자신을 특징지을 수 있는 말이나 '바람'을 가지고 스스로 만든 말인데 필자는 '부족함이 없는'이다. 이 말은 교회 이름에서 따왔다.

온교회의 '온'은 전주(全州)의 우리말 '온고을'에서 따왔다. 교회는 지역을 섬겨야 한다는 책임감과 교회에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자는 마음 그리고 '씨줄'과 '날줄'이 모두 얽혀야 제대로 되듯이 모든 사람들이 어울려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필자의 수식어인 '부족함이 없는'은 필자에게 맡겨진 '온교회'와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갖게 된 세상의 '온 교회'의 '부족함이 없는' 목자이길 바라는 필자의 거대한 바람이다.

오늘 이야기를 하려 하는 짱은 교회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아직 수식어가 없다. 그래서 필자는 고심 끝에 '씩씩한'이란 수식어를 붙여 글을 쓰려 한다. 요즘은 결혼이주여성 중에 재혼으로 온 경우들도 자주 접하게 되지만 씩씩한 짱이 왔을 때에는 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걸 자신의 부족함으로 생각하며 한국 생활이 힘들어서도 참고 이겨냈다. 베트남에 두고 온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도, 임신 중에 세 개에 2000원 하는 오이가 먹고 싶어 시어머니께 사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해 서러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원룸을 얻어 세 가족이 분가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을 때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그러기에 자신은 반드시 잘 살아야 한다며 마음을 곧추잡았다.

그렇게 씩씩하게 살아온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컴퓨터 설계프로그램인 오토캐드 자격증을 따 취업을 했다. 사무직이었지만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그녀는 주변의 힘들어하는 베트남 친구들에게 멘토가 되었고, 그녀에게 힘들어 하소연하는 친구 중 일부는 필자의 몫이 되었다.

씩씩한 짱의 부탁으로 두 명을 도와 이혼소송에서 이겼을 때 짱은 자신도 필자처럼 친구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면서 교회에 나오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본인의 꿈인 사업과 또 주변 친구들을 돕기 위해서는 베트남 방송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주말밖에 시간이 없기에 학업을 마치면 교회에 다니겠다고 했다. 학업은 마쳤지만 자신이 시작한 사업이 너무 바쁘다는 그녀의 핑계와 예배를 비대면으로 드려야 하는 교회의 형편이 맞물려 아직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필자는 사역장(교회)에 갇혀있다시피 하였다. 주중에는 다문화 사역을 하며 행여 누구라도 급하게 필자를 필요로 할까 봐 자리를 비우질 못했고, 주말에는 교회사역으로 햇빛 한 번 제대로 쪼여 보질 못했다. 이런 필자에게 코로나는 언제 끝날지 모를 안식의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코로나로 다문화 사역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나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쓴 연재 글은 필자에게 초심을 되찾게 하였다. 특별히 오늘의 글을 정리하며 필자는 씩씩한 짱에게서 희망을 배운다. 아무리 힘들어도 굽히지 않고 오히려 더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보며 필자는 온교회와 세상의 온 교회의 부족함이 없는 목사가 되고자 마음을 다잡는다.

도주명 목사/온교회다문화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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