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말 사이에서
[ 논설위원칼럼 ]
작성 : 2020년 10월 12일(월) 16:08 가+가-
목사인 저는 늘 말씀과 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설교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처절하게 애를 쓴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때로는 강단에서조차 사람의 말을 전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여 전하고도 의기양양하니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하실지 두렵다.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 사람의 말을 전하려는 유혹과의 전쟁터라 하겠다.

간신히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내려왔다고 하지만 그 후에는 더 문제이다. 많은 대화, 각종 회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온데간데없고, 사람의 말만 난무하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수긍하지만, 상대방의 말에는 수긍하지 않고 반박하니 갈등만 깊어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때 느끼는 기쁨보다 자신의 말이 관철될 때 느끼는 쾌감이 더 클 때가 많으니 걱정이다.

우리는 말씀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각종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예배를 드린다. 거기 말씀이 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고 회의가 시작되면 조금 전의 말씀은 사라지고 말들만 난무하다. 말씀이 끌어당기는 힘보다 사람의 말이 잡아당기는 힘이 더 강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하나님의 말씀은 '멈추라'고 하시는데, 저쪽의 사람이 '오라'고 부르면, 애써 마음의 불편을 무릅쓰고 사람에게로 간다. 이런 모습은 총회나 노회라고 예외는 아니라 여겨진다. 이러다 보니 자칫 총회나 노회에서 '말씀' 대신 '말'이 승리할까 염려된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신앙이지만, 말의 잔재주에 의존하는 것은 정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음으로 부르셨지, 정치로 부르지는 않으셨다. 말로 세우는 것은 무너지지만, 말씀 위에 세워지면 견고하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라고 하셨다. 그때 모세는 자신이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님은 모세가 말과 하는 일들이 능했다고 했다. 성경에서 모세의 말재주에 대해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으니, 모세는 달변가였을까, 눌변가였을까? 필자는 모세가 달변가였다고 믿는다. 그 이유로 첫째,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모세 자신이 한 말이니 그가 겸손했다는 증거이고, 겸손보다 뛰어난 달변은 없다. 둘째, 결국 모세는 백성들을 출애굽시켰다. 달변과 눌변의 차이는 유창함이나 화려함에 있지 않다.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 게 진정한 달변이다. 그가 바로 앞에서 더듬거리면서 천천히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바로가 손을 들었다. 승리는 모세의 것이었다. 그리고 모세가 승리한 궁극적 이유는 그가 자기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애굽에 갔고, 말씀대로 바로 앞에서 행했기 때문에 승리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말씀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말씀을 따라 사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씀에 서서 사람의 말을 향해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의 말, 남의 말, 사람의 모든 말에 대해 싸워야 한다. 마음과 가정과 교회와 총회에서 말씀이 말을 이길 때, 비로소 바로 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다. 말로 떡을 얻을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말씀은 생명을 얻게 할 것이다. 조금씩 사람의 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까이 가길 소원한다.

김운성 목사/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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