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하는 자백
[ 투고 ]
작성 : 2020년 09월 28일(월) 11:06 가+가-
30여 년 전에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있었다. 범인을 잡지 못해 영구미제사건으로 끝나는 것 같더니 최근에 와서 범인이 잡혔다. 범인을 잡은 후 알아낸 여러 일들 중에 하나는 범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이 사건에 누명을 쓰고 17년 동안을 복역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당시 고문으로 인해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이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한 사람의 젊음이 송두리째 유린당한 것이다.

종종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사회는 불의한 사회다. 어쩌다 한 번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본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분노해 준다면 그나마 정의로운 사회에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억울한 옥살이는 아니더라도, 내가 한 일이 아닌데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프레임을 씌워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경우를 본다.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해명을 해도 근거 없이 '너는 그렇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실된 속을 보여줄 수도 없을 때 당황할 뿐 아니라 속이 끓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집요한 자백의 강요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간접 살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타블로라는 가수는 미국 스탠포드대학을 나왔다고 했는데, 그의 안티 팬들은 '아니다'라며 시비를 걸었다. 그가 졸업장을 보여줘도, 또 스탠포드대학의 학장이 그 학교 출신이라고 얘기해도, 또 같이 공부한 사람이 맞다고 해도 안티 팬들은 순복하지 않았다. 기이한 일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얘기를 하고 싶다. 요즘 항간에는 장신대가 마치 친 동성애 집단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전에 학생 몇 명이 무지개 퍼포먼스를 한 일이 있다. 물론 이 학생들을 징계했다. 그러나 그 이후 누군가(?) 학교에 이런 꼬리표를 붙여 버렸다.

학교의 대표인 총장이 동성애에 대해 관대하다는 말로 시작했다가 더 나아가 친 동성애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의 사상을 아무리 뒤져봐도 친 동성애 부분을 찾아 볼 수 없다. 진지하게 대화를 해 보아도 그렇다. 단지 총장은 학생들을 사랑한 것 뿐이요, 우리 총회나 성경이 말하는 대로 동성애는 미워하지만 동성애자는 감싸 안아 그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할 예수님의 정신이요, 보편적인 기독교인들의 마음이다.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사장과 총장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정죄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렇게 성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이 많았고, 급기야 이사회에서 뽑은 총장을 총회에서 인준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히틀러의 앞잡이 괴벨스가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대중은 처음엔 의심하지만 반복하면 믿는다'라고 한 '선동이론'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배후에 뭔가가 있기에 자백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는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흰색을 희다고 해야지 남들이 강요한다고 흑색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혹시 이렇게 강요하려는 사람들 속에 어떤 다른 이유가 있다면 정정당당하게 '이것이 문제다'라고 말해 주어야 옳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기독교는 버림받은 존재처럼 되어져 가고 있다.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밑을 모르는 무저갱의 바닥으로 추락하는 듯한 모습이다. 세상은 교회와 교회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는다. 한 기독교 대학의 교수는 전화로 입학문의를 받는 과정에서 '우리학교는 기독교 정신에 의해 설립된…'이라고 하니까,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더란다. 이제는 사회에서 교회 다닌다는 말이 부끄러울 지경이라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우리 스스로도 '교회의 위기'를 자주 말한다. 그러면서도 점점 더 정직하지 못하고, 신뢰를 잃은 말과 행동이 내부에서 많아지고 있음을 본다. '주여, 회복하게 하소서'가 구호로 끝난다면 오히려 더 큰 신뢰를 잃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 이상 근거 없는 강요된 자백과 같은 일로 내부 총질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자멸을 앞당길 뿐이다. 교회 내의 마녀 사냥은 지나간 역사이기를 바라고 현재진행형이 아니기를 바란다.



장경덕 목사/가나안교회, 장신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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