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을 치리하는 어려운 결정
[ 땅끝편지 ]
작성 : 2020년 10월 02일(금) 14:13 가+가-
영국 장순택선교사7

장순택 선교사가 섬기는 교회의 영국 어르신들.

영국교회에 부임하게 됐을 때 노회장과 영국교회 목사들의 들려준 주의사항은 '처음 일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 교회의 돌아가는 상황만 살피다가 일년 후부터 장로들과 같이 의논하며 교회 일을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필자가 사는 집으로 70세 노인인 힐러리 여사가 찾아왔다. 영국은 사택을 방문하려면 미리 약속을 하거나 우편함에 방문을 예고하는 편지를 놓고 가기에 아침 일찍 누르는 벨 소리에 당황했다.

힐러리는 할 말이 있어서 왔다며 집안으로 들어왔고, 아내가 차와 다과를 준비해 주었다. 아내는 집에 교인이 오면 보통 자리를 피해주는 데 힐러리 여사는 아내가 같이 들어야 한다며 붙잡았다. 곧이어 듣게 된 이야기는 사랑하는 남성이 생겨 지금의 남편을 떠나려 하는 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었다. 힐러리의 남편 피터는 78세였다. 뜻밖의 말에 놀라 우리 부부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다가 영적인 어머니 티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기도를 부탁했다.

그런 후 그날 저녁 장로 모임을 소집했다. 당시 필자의 생각엔 장로들이 교인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함께 의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신입 목사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을 받은 5명의 장로님들이 감사하게도 모두 참석해 주었다. 필자는 이 일을 외부로 유출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 후 힐러리 여사의 이야기를 전했다. 모두 놀랐고, 힐러리 여사가 전에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혹시 유사한 증상이 재발한 것 같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필자는 우선 상황이 어떻게 진전되는지 살피며 함께 기도하자고 부탁했다.

주일 오전예배에 부부가 같이 참석했고, 예배 후엔 함께 차도 마셨다는 얘기를 듣고 안심하려는 차에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월요일에 피터를 심방했는데 그가 우리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주일예배 후 4시쯤 힐러리 여사는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통보했고, 저녁에 그 남자와 함께 자신의 짐을 가지고 떠났다고 한다. 피터는 "이 나이에도 돈을 벌겠다고 더 나이 많은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사이 힐러리가 다른 남자를 만날 줄은 몰랐다"며 통곡했다.

교회가 월요일 오전 진행하는 유아와 엄마를 위한 친교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의 책임을 맡고 있던 힐러리 여사는 아기 엄마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고, 일부 엄마들은 '사랑하는데 어떻냐'며 지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필자는 저녁예배 후 다시 장로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힐러리 여사가 교회 오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만 교회의 어떤 직책도 맡길 수 없다. 성경에 제재를 가해야 할 근거는 너무나 많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편에서는 '용서해주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를 해줄 수 있느냐'는 다른 장로들의 의견이 많았기에 힐러리 여사가 책임을 내려놓도록 통보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장로들이 이 일을 여러 사람을 통해 알아보고 조언도 들었다고 한다. 괜찮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의 의견에 찬성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조치에 반감을 가진 교인들이 생겨나게 됐고 필자와 아내를 바라보는 눈빛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차를 마실 때 그 사람들은 우리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물론 걱정 말라며 우리를 위로해 주는 교인들도 있었다. 결국 힐러리 여사는 이혼을 했고, 피터는 딸을 따라 멀리 이사했다.

이 일을 해결하며 장로님들과 관계는 매우 가까워졌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성경에 따라 결단하는 목사라며 많은 지지와 신뢰를 보냈고, 이후 교회가 하는 일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에 감사드린다.

장순택 목사 / 총회 파송 영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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