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의 비유(마 25:14-30)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작성 : 2020년 09월 04일(금) 17:25 가+가-
8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라!
자료인 달란트 비유는 누가에서는 므나 비유(19:11~27)로 보도된다. 어떤 것이 초기 형태냐에 대한 자료 논쟁은 별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등장인물과 지불되는 돈의 액수에 있어 큰 차이가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비유를 논의하는 정황이 서로 대립되기 때문이다. 달란트 비유는 종말론적 심판을 강조하는 마태복음 24~25장의 연속적인 6개의 비유들 가운데 다섯 번째로 나타난다. 그래서 달란트 비유는 종말의 결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반면 므나 비유는 재림지연, 곧 종말론적 심판이 지연되는 것을 설명하려는 정황 가운데 나타난다(19:11). 이렇게 각각의 비유 속에는 마태와 누가의 신학적 특색이 강하게 반영되었다. 그래서 초기 형태의 자료를 찾기보다는, 각각 보도하고 있는 그 형태 속에서 비유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다.

달란트 비유를 해석함에 있어 문제점은 너무 돈의 이윤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곧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각각 두 배의 이윤을 남겼기 때문에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고, 반면 1달란트를 받은 종은 이윤을 남기지 못해서 주인에게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주인이 종들을 칭찬하고 저주한 그 핵심 내용을 간과한 것이다.

한편 오늘날 일부 학자들은 이런 경제적 이윤의 측면에 대한 해석 기류에 반발해서, 받은 1달란트를 그대로 돌려준 종은 오히려 주인이나 로마의 착취 경제에 맞서 저항하는 인물로, 그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님이 경제적 평등의 공동체를 추구했다는 전제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이 평등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셨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악한 종'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을 영웅시하거나 또는 예수님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서 본문으로부터 아주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태와 누가가 부활한 예수님을 '악한 종'으로 묘사하고, 그리고 그를 메시아로 섬겼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달란트 비유는 종말론적 심판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 예수님)이 종들을 결산한, 곧 평가한 내용에 들어있다. 먼저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은 종들의 평가 내용을 살펴보자. 그들이 받은 달란트에서 갑절의 이윤을 남겼다고 말하자, 주인은 그들에게 동일하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 23절)라고 말한다.

첫째 여기서 "잘하였도다"라는 말은 문맥상 이윤을 남긴 것에 대한 칭찬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엄청난 돈을 주인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1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으로 노동자가 19~20년 일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임) 빠른 시일 내에 쉽게 두 배의 이윤을 남겼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본문을 정확히 읽지 않아 생긴 오해이다. 주인은 종들에게 5와 2달란트를 위임하고 "오랜 후에"(19절) 결산하였다. 이 시간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비유가 종말의 심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10~20년 또는 한 사람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전체의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종들은 단지 '장사'만 해서 이윤을 남긴 것은 아니다. 우리말 성경은 '에르가조마이'라는 동사를 '장사'(16절)라고 번역했지만, 이 동사는 보편적으로 '일하다'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여러 분야에서 아주 오랫동안(- 또는 평생?) 열심히 일했고, 그것 중 하나가 '장사'이다. 그래서 주인은 그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둘레 아가테 카이 피스테)이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착하고'라는 형용사 '아가테'는 '선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종들은 일하는 동안 이윤을 남기고자 다른 사람들을 속이거나 착취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충성된'을 뜻하는 '피스테'는 '신실한'이란 의미도 갖고 있다. 이것은 종들이 주인이 맡긴 과제를 성실히 수행했다는 의미도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진실했음을 말한다.

또한 주인은 종들에게 "적은 일에"(에피 올리가) 충성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적다'라는 말은 받은 돈의 액수가 5달란트와 2달란트가 '적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맡겨진 일의 과제가 '적다'라는 것이다. 곧 종들은 주인의 '재산'만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이 맡겨진 한 가지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니, 주인은 그들을 믿고 "많은 것을"(에피 폴론) 맡기겠다고 말한다.

둘째 주인은 1달란트를 받고 땅에 묻은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포네레 둘레 카이 오크네레)이라고 말한다. 먼저 '게으르다'라고 말한 것은, 다른 종들이 오랫동안 열심히 일한 것과 대립하는 의미로, 그 기간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한 것이다. 그리고 '악하다'라는 것은 주인을 "굳은(= 거친)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24절)로 생각하는 그의 태도와 관련된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게으름을 주인의 탓으로 돌리는 그의 태도가 악하다는 것이다.

주인은 그 종에게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26절)라고 반문한다. 이것은 주인이 결코 그런 인물이 아님을 자신이 항변한 것이다. 그리고 주인은 종에게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1달란트를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자신이 돌아왔을 때 원금과 이자를 가져올 수 있지 않았냐고 묻는다(27절). 이것은 이윤을 남기지 않은 것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종의 말대로 자신을 두려워했다면(25절) 그에 맞는 행동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은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 종은 말과 행실이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악하며, 주인에게 무익한 자이다(30절).

1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오해했다. 그래서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둬들이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또한 그는 주인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말로는 주인을 두려워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의 행동에는 주인을 두려워한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주인을 우스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자기 뜻대로 주인이 움직여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셋째 오늘날에도 이러한 기독교인들이 많다. 하나님을 잘못 이해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며, 또한 너무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해서 하나님의 권위와 계명을 무시하고서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남들과 비교해서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소홀히 여기고 충성하지 않으며 큰 사명 달라고 요구하며 허송세월 보내는 자들도 있다.

류호성 교수/서울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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