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 공감책방 ]
작성 : 2020년 08월 21일(금) 08:02 가+가-
'짧은 귀 토끼'와 '미움받을 용기'를 통해서 본 '정직성'의 의미
'짧은 귀가 어때서?'

다른 친구와 달리 동동이는 귀가 짧은 토끼이다. 하지만 귀 짧은 동동이는 주눅 드는 법이 없다. 토끼는 모름지기 귀가 길고 짧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수리 같은 천적이 나타났을 때 빨리 도망하고 높이 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친구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의 한마디 툭 던지는 말이 쌓여가고 때로는 노골적인 비웃음에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타인의 시선의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동이는 자신의 귀를 늘리기 위한 기상천외한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채소를 많이 먹어보기도 하고, 빨랫줄에 귀를 매달아 늘려보기도 하고, 식물이 자라듯 매일매일 자신의 귀에 물을 줘보기도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커다란 모자로 가리고 다니기도 하다가 급기야는 커다란 귀 모양 빵을 만들어 달고 다니며 친구들에게 이제는 자신도 큰 귀를 가졌노라고 자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림책 '짧은 귀 토끼'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던 한 어린 토끼가 점차 사회화되어가면서 다른 이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그 관계 안에서 경쟁하고 동시에 고통당하는 심리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심리학자 아들러가 동동이를 만났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한 청년과 한 철학자의 대화를 통해 아들러의 심리학을 친절하게 풀어간 '미움받을 용기'는 '짧은 귀 토끼'의 해설서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고통받고 그로 인해 열등감 콤플렉스에 빠져버린 인간의 심리를 잘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해 강조하고 싶은 점은 바로 과거의 사실은 변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혹은 콤플렉스는 프로이트가 주장한 '원인론'의 산물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열등감도 객관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주관적 해석에 가깝다고도 말한다.


내가 아는 젊은 친구는 소년 시절에 거울 앞에서 오랫동안 머리를 빗는 습관이 있었다는 군.
그러나 할머니께서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네.
"네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너뿐이란다." 그날 이후로 그는 삶이 조금 편해졌다고 하더군.
- '미움 받을 용기' 중에서




책 '미움받을 용기'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대해 믿고 신뢰하는 바를 실천하고 그 삶을 살라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영어 단어 중에 '인테그리티(integrity)'가 있다. 예전 리더십 책에서는 '성실성', '통전성', '일관성' 등으로 번역되었다가 최근에는 '정직성'이라는 말로 자주 번역되곤 한다. 'integrity'는 마치 '언행일치'의 삶과 같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내 생각과 행동이, 나 혼자일 때의 삶과 일치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연상이 될 것이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그 안에서 원칙을 발견하며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이 바로 'integrity'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결국 '미움 받을 용기'는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대교 교리 중에 이런 말이 있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비판한다.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 명 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없는 벗이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이때 나를 싫어하는 한 명에게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사랑해주는 두 사람에게 집중할 것인가, 혹은 남은 일곱 사람에게 주목할 것인가?
그게 관건이야.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한 명만 보고 '세계'를 판단하지.
- '미움 받을 용기' 중에서




아들러의 심리학 용어를 기독교적 용어로 변환하면 어떻게 될까? '코람데오'의 개념과 상응하지 않을까? 보여지는 것, 타인의 인정과 시선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떠한 생각과 모습으로 서 있는가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먼저 그 거룩성을 회복하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삶,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미움'을 받을지라도 선택한 일에 스스로 신뢰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코람데오'의 정신이 지금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중요한 신앙의 원리가 될 것이다.

그나저나 향긋한 '토끼 귀'를 달고 사는 동동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황인성 목사 / 책보고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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