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처럼 '칭찬과 택함'을 받은 이월식 장로
[ 기획 ]
작성 : 2020년 07월 27일(월) 05:10 가+가-
경기중앙교회 시무장로·전 안양노회장

이월식 장로 가족 사진. 이 장로의 신앙가훈은 '화평'이다.

이월식 장로(경기중앙교회)는 '작은 거인'으로 불린다. 어려서부터 또래보다 체구가 작지만 외모든 삶이든 자신의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추진력 있는 리더십과 대인배 면보를 보여 붙여진 별명이다.

실제 삶이 그랬다.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간구하니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크고 단단한 자아가 만들어졌다.

성경의 삭개오같은 인물이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그리스도의 눈에 띄어 칭찬과 택함을 받았다.

이월식 장로는 한국전쟁 휴전의 해인 1953년 태어났다. 3남 1녀 중 막내인 그는 유복자다. 어머니 태중에 아버지가 전쟁 피난길에서 별세했다.

29살에 홀로된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며 4남매를 키웠다. 남의 집 허드렛일부터 삯바느질로 가계를 이끌었다.

이월식 장로는 교회와 노회는 물론 연합회 활동에서도 두루 쓰임받고 있다. 사진 위로부터 비전트립을 떠난 당회원들과, 안양노회 장로중창단 단원들과, 서울강남장로협의회장으로 임원들과 함께 한 이월식 장로.
경기도 파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이 장로는 줄곧 반장을 하던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이때 제발로 교회를 처음 가봤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도 만나고 선물도 받으려고 스스로 교회를 찾아간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과 구원의 은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총명함이 남달라 집안의 기대주로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누나와 함께 서울로 유학을 갔다. 그러면서 교회를 출석하지 못했지만, 당시 접한 복음은 마음 속에서 유효했다.

이 장로는 "마포에 조그만 방 한칸을 얻어 생활했는데, 어머니가 그립고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아 힘들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 당시 잘 먹지 못해 키가 작은 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도 그 시절 어려운 고비를 견디고 버티니 훗날 끈기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형편 상 수업료 면제를 받고자 필사의 노력으로 고등학교 때는 성적장학금을 받았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다.

대학 졸업 후 당시 산업화에 따라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던 무역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면서 누나의 권유로 왕십리에 있는 교회를 출석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독일 주재원으로 1년 정도 나가 있고,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교회 출석은 소홀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앙은 무르익지 않은 상태였다.

대리 직급이던 직장생활 3년차에 젊은 혈기로 무역회사 창업을 했다. 이 무렵 신앙의 동반자 부인 이봉애 권사를 친구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후배 2명과 역삼역 근방에 창업한 회사의 경영은 기대와는 다르게 지지부진했다. 수주가 미비하고 자금력이 부족하자 경기도 안양 외곽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이 장로는 "창업하고 3년이 되니 자금난에 처했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지 못하는 기간이 점점 늘었다"고 설명했다.

삶이 고단하니 교회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현재 시무장로로 있는 경기중앙교회를 출석하게 됐다. 현재 그 교회 원로인 김상익 목사(당시 담임목사)의 목양을 통해 신앙이 점차 뜨거워졌다.

이 장로는 유복자여서 "아버지" 소리 한번 해본 적이 없는데, 교회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원없이 외치며 성경에 순종하는 삶을 간구했다.

이월식 장로는 바른 신앙생활과 리더십을 보여 안양노회 제33대 노회장으로 활동했다.
안양에서 서울로 다시 사무실을 이전하고 애통한 사건이 일어났다. 딸 2명을 두고 낳은 아들이 돌을 막 지날 무렵 집 창가에서 떨어지는 사고사를 당했다. 자칫 신앙을 잃을 수 있는 기로에서 이 장로는 신앙으로 모든 괴로움을 극복했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일어날까라는 고통과 슬픔, 좌절, 절망, 죄책감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고 울며 매달리고 기도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이 장로는 아린 마음 추스르며 식구들을 위해 다시 일에 매진했다. 오퍼상으로 중견 화장품회사 물건을 위탁받아 수출하고, 러시아와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 매수매도 거래 조정을 하며 사업이 나날이 번창했다.

그러면서 교회 봉사에 소홀함이 없어 45세에 장로임직을 받고, 성가대원과 15년 간 교회학교 사역을 하며 그의 표현대로 "신나게 믿음생활"을 했다.

그는 모범적인 신앙생활과 리더십을 인정받으며 2015년 안양노회 제33대 노회장에 선출됐다. 노회장을 지내면서는 책정된 활동비를 쓰지 않은데다 오히려 사재를 털고 주변에 모금을 독려하며 자립대상교회를 지원하는데 앞장섰다.

이월식 장로는 세계선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열방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 장로는 교회에서 12년 간 선교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세계선교에 남다른 애정과 비전을 갖고 있다. 경기중앙교회가 세계에 114개 교회 개척 헌당을 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 장로 가족은 몽골 울란바토르에 교회를 개척했다.

경기중앙교회 담임 이춘복 목사는 이월식 장로에 대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참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분이다. 선임장로님으로 당회가 평안하도록 하는데도 큰 역할을 해오셨다"고 전했다.

이 장로는 현재 몽골 울란바토르에 화장품 매장 7곳을 운영중이며 최근 국내 한 중소기업을 인수하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업 확장은 세계선교의 지경을 넓히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이 장로는 자기를 꾸미는데 투자하기보다는 '오직 선교'에 집중하고 있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동승한 이 장로의 승용차는 기업 오너답지 않게 20년이 거의 다된 연식에 주행거리는 23만km일 정도로 소박하고 검소하다.

이월식 장로는 "내 신앙 모토는 '화평'이다. 그래서 산상수훈의 가르침처럼 화평케 하는 자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전 세계 분열이 있는 곳에 화해와 평화가 조성되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이 복음을 접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세계선교에 여생을 바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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