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내어주는 그리스도인
[ 공감책방 ]
작성 : 2020년 07월 24일(금) 08:00 가+가-
'사람, 장소, 환대' 그리고 '쫌 이상한 사람들'을 통해 본 환대의 의미
# 현대 사회에 필요한 덕목 '환대'

'사람, 장소, 환대'는 빨리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문장과 문장의 공백을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가야 하는 철학책이라 할 수 있겠다.

밥은 밥공기에 있을 때는 먹음직스럽지만 그릇 밖에 있으면 더러운 것이 된다. 겉옷 위에 속옷을 입는 것은 더러운 것이 되고 신발이 바닥이 아닌 책상 위에 올려지면 더럽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더러움'의 개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저자는 바로 이러한 기준이 사회 안에서 규정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우리가 태어났을 때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되었지만 '사람'으로 사회 안에 받아들여질 때까지는 또 다른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자격을 얻는 것이고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의 합의에 따라 예전에는 노예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흑인에게 사람의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전쟁 시 군인은 사람이 아닌 전략적 도구로 이용되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마주하는 상대를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사회 안에서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환대의 행위임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사람이 될 권리가 있다는 것, 공적 공간에서 모든 사람은 의례적으로 평등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환대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과도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계속해서 강조한다.

가령 1960년대 미국 남부의 식당에서 흑인 청년 3명이 커피를 시키는 것은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자신의 사람됨을 강조하였고 그들의 저항은 '자리앉기'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회마다 시대마다 그들이 허용하는 상대적 기준이 존재하고 때로는 기독교적 가치관과 상충 되기도 한다. 각 사회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례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 '낙인자' 그룹을 만들어 낸다. 노숙자의 인사를 거절한다고 해서, 제소자들이 입소할 때 그들의 신체가 노출된다고 해서 비난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절대적 환대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즉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 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환대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환대는 실로 우정이나 사랑 같은 단어가 의미를 갖기 위한 조건이다"

# 예수님은 당시 통념 깬 '매우 이상한 사람'

스페인 작가 미켈 탕코의 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은 바로 사회적 통념의 범위를 벗어나 타인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절대적 환대를 베푸는 사람들이다. 행여 개미들을 밟을까 봐 아주 작은 것에도 마음을 쓰고 혼자라고 느끼는 이가 있다면 곧바로 알아채서 다가가고, 자기편이 졌어도 이긴 팀에게 박수를 보낼 줄 아는 사람들, 다른 사람이 더 큰 물고기를 낚아도 진심으로 기뻐해 줄줄 아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더럽다고 느끼는 것,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 사람이라고 인정받았다고 느끼는 것, 모욕받았다고 느끼는 것, 환대받았다고 느끼는 것… 우리가 속한 특정한 사회, 시대는 계속해서 일련의 정형화된 암묵적 기준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때로는 강요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저자의 '세상에 이렇게 쫌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의 마지막 말처럼 낙인 도장을 받은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차별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적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예수님은 결국 그 당시 사회에서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종교인들이 가진 사회적 통념과 환대의 경직성에 도전하고 그것을 넘고자 하신 것이다. 자칫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종교적 '사랑'을 이루기 위해 타인에게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그들을 향한 환대를 악용할 위험이 있기도 하다.

자선의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타인을 대하고 우리가 속한 사회 속에 기꺼이 우리의 자리를 내어주는 환대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황인성 목사 / 책보고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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