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하는 인간이 되는 시간
[ 공감책방 ]
작성 : 2020년 06월 26일(금) 09:00 가+가-
'피로사회'와 '프레드릭'을 통해 본 사색의 의미
2020년을 시작하면서 그 누구도 코로나19와 같은 팬더믹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코로나 이전 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상실감과 앞으로 이런 상황이 지속 혹은 악화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동시에 사람들은 이전에는 만나보지 못했던 느린 세계, 사색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전에는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환경'에 대해 고민하며 더 진지한 삶의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또한, 목회자들은 이 시기를 지나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고 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동시에 타의적으로 관계의 제한이 생기면서 오히려 개인의 삶을 돌보고 가까운 주변을 돌볼 수 있는 또 다른 공간을 발견하고 있다.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 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피로사회는 이미 2010년 초반에 독일에서 출판되어 주목을 받았고 한국에 역으로 번역이 된 철학에세이다. 이후 아름다움의 구원, 에로스의 종말 등 미학적 관점에서 현대사회를 진단하는 책이 시리즈로 출판되기도 했다. 저자 한병철이 지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바로 '긍정의 과잉성'이다. 좋고 나쁨이 명확했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졌고 좋음과 좋음 사이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긍정의 과잉성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일이 아니라 다양한 일을 다 잘하는 '멀티 태스킹'이 삶의 기본 덕목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한 가지만 잘해서는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살기로 강요받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잉여시간을 부여받은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잉여시간은 또 다른 긍정의 과잉성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당장 나의 하루만 돌아봐도 '사색'의 시간은 온데간데없고 SNS와 카톡, 수많은 회의와 모임들이 알뜰하게 나의 잉여시간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과잉성으로 인해 우리는 오히려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는 피로감을 겪게 되는 것이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으며,
홀로 고독에 빠져 있을 때만큼 덜 외로운 때도 없다"


프레드릭의 속표지: 깊은 심심함에 빠져있는 프레드릭의 마음 같아 보이지 않나요?

여기 깊은 심심함을 즐기는 프레드릭이라는 한 마리 쥐가 있다. 다른 쥐들은 열심히 행동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프레드릭은 베짱이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른 쥐로 보인다. 그런데 프레드릭의 대답은 명확하다. "나도 일하고 있어."

프레드릭은 추운 날을 대비해서 따뜻한 햇볕을 모으고 있었고, 회색빛 겨울에 대비해서 색깔을 모으고 있었으며, 이야기가 사라질 때를 대비하여 말들을 모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겨울이 되어 모든 쥐가 한곳에 모였을 때, 쥐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업적과 성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게 되었고 그들은 피로감에 쌓인 채 어떤 말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프레드릭의 시간이 왔다. 프레드릭은 추워하는 친구들에게 햇살을 알려주었고, 파란 덩굴 꽃, 노란 밀집 속의 붉은 양귀비 꽃, 초록빛 딸기 덤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프레드릭의 선물을 받는 친구들은 프레드릭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건넨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성과가 사라지고 행동이 제약되는 것에 대한 공포와 좌절을 넘어서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을까?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멀티태스킹형 인간'이 아닐지라도 사람들에게 삶의 본질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인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황인성 목사 / 책보고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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