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이 되기: 지식의 저주를 깨고 소통에 이르는 길
[ 주간논단 ]
작성 : 2020년 06월 16일(화) 00:00 가+가-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고전 9:22 )

사람의 마음을 말로써 얻는 것은 매우 힘들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말을 하더라도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 왜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처지가 다르고, 다른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이의 지식과 듣는 이의 지식이 차이가 날수록 소통이 실패할 가능성은 커진다. 그런 이유로 말하는 이가 해당 주제에 대해 많이 알수록 소통은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를 소통을 가로막은 지식의 저주라고 한다. 지식의 저주에 관해 대표적인 연구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엘리자베스 뉴턴이 한 실험이다. 뉴턴은 참여자를 두 명씩 짝지어 한 명에게는 문제를 내게 하고 다른 한 명에게 답을 맞히게 했다. 출제자가 간단한 노래를 머릿속에 되뇌면서 리듬에 맞추어 탁자를 두드리면 응답자가 제목을 맞추는 게임이다. 뉴턴은 출제자들에게 게임을 설명한 후 응답자가 제목을 맞힐 확률을 물어보았는데 많은 이들이 반반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실제로 답을 맞힌 경우는 2.5%에 불과했다. 사실 탁자 두드리는 소리만으로 노래 제목을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에 노래를 되뇌는 사람, 즉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한다. 단순한 설명으로도 이해하리라 잘못 짐작하게 되고 소통은 실패하게 된다. 말하는 이의 지식이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은 것이다. 처음 오는 사람에게 집으로 오는 방법을 알려줄 때도 지식의 저주가 소통을 방해한다. 내 머릿속에 지도가 분명할수록 처음 오는 사람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부실한 안내를 해서 소통은 실패하고 손님은 길을 잃는다. 기업 CEO의 훈시가 일선 직원의 마음에 잘 가닿지 않는 이유, 아버지의 어려웠던 시절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자녀에게 잘 가닿지 않는 이유, 유학 가서 오랫동안 공부한 목사님의 설교가 신도들의 마음에 잘 가닿지 않는 이유 중의 일부도 거기에 있다.

약한 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 약한 자가 되었다는 바울의 고백은 지식의 저주를 벗어나는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소통은 결국 듣는 이에 의해서 결정된다. 화제는 듣는 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어야 하고, 메시지는 듣는 이가 이해할 만한 것이어야 하고 듣는 자가 주장을 받아들이는데 다른 문제나 괴로움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얻는 소통을 위해서는 먼저 듣는 이를 잘 알아야 한다. 그들이 품고 있는 생각,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야 한다. 설득과 소통 연구는 듣는 이가 가진 지식의 내용과 수준을 미리 잘 알아 거기에 맞추어 소통해야 함을 강조한다. 바울의 소통은 더 근본적이다. 바울은 율법을 모르는 자에게는 율법을 모르는 자가 되고, 믿음이 약한 자에게는 믿음이 약한 자가 되었다 (고전 9:21~22). 듣는 자와 같이 되어 그들과 삶의 경험을 공유하며 그들과 같은 눈으로 문제를 바라볼 때 마음을 얻는 소통이 가능함을 바울은 역설한다. 바울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지 않고 듣는 이가 되어 소통했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듣는 이들의 삶을 잘 아시고 그들에게 맞추어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중에 여성들이 많았는데 (눅 8:1~3), 하나님의 나라를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에 비유(마 13:33)하시는 등 여성들의 삶을 자주 언급하셨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 (눅 12:6) 그리고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면 옷이 해어지는 것 (막 2:21)은 당시 여성이 아니면 알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듣는 이의 지식을 바탕으로 말씀을 전하셨음을 알 수 있다. 생베 조각 비유 말씀 뒤에는 다른 청중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당대 지식인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자른 것을 문제시하자(막 2:23~28) 예수님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성전에 들어가 진설병을 먹은 역사적 사실(삼상 21:6)을 논거로 제시하시며 그들을 설득하신다. 지식인들에게는 그들의 방식으로 소통하셨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말씀하셨다. 쉬운 이야기 속에 깊은 삶의 진리를 담으셨다.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22절의 짧은 글이지만 마치 장편 소설처럼 읽힌다. 읽을 때마다 다른 어떤 문학작품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주기도문은 7절의 짧은 기도문이지만 어떤 긴 기도문보다 하나님과 우리를 더 가깝게 한다. 듣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지식의 저주를 깨고 나와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듣는 이와 하나 되어 쉽게 소통해야 한다.

정성은 교수/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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