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시간, 새로운 삶 준비하는 거룩한 시간으로
[ 5-6월특집 ]
작성 : 2020년 06월 09일(화) 09:40 가+가-
6.포스트코로나,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라는 말이 있다. 다윗 왕의 반지 안에 새겨진 문구라고 한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게 멈춰 선 시간이다. 생계를 위해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하지만 이 사태도 언젠가는 잦아들 것이다. 보건 당국과 의료진의 헌신으로, 그리고 시민의 협력으로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post-COVID 19)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가? '익숙한 옛날'로 돌아가는가? 그런데 어서 돌아가고 싶은 그 옛날의 일상은 과연 '평범한' 일상이었는가?

인류는 20세기까지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1918~1920년에 스페인 독감이 크게 유행해 5천만 명이 사망했을 때도 과학자들은 독감 바이러스의 정체를 몰랐다. 그 후 1백 년이 지나 인류는 몇몇 전염병 퇴치에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새롭게 출현하는 신종 전염병을 막지 못하고 있다. 사스(2003), 신종 인플루엔자(2009), 에볼라(2014), 메르스(2015) 그리고 이번의 코로나19(2019) 등, 새로운 종류의 감염병이 점점 더 빈번하게 나타나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왜일까?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의 저자 네이선 울프는 갈수록 위협적인 감염병이 빈번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인수공통(人獸共通) 감염병'(zoonosis)이기 때문이라고 일러준다. 천연두, 소아마비처럼 인간만 침범하는 병은 백신 개발과 접종으로 거의 박멸했지만, 지금 우리 앞의 새로운 위협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전파되는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이로 인해 벌써 지난 40년 동안 전 세계에서 3천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인수공통 :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쓴 데이비드 콰먼에 의하면, 이렇게 종간 전파로 퍼져나가는 인수공통 감염병은 인간에게 매우 치명적인데, 그 이유는 모든 동물을 지구에서 모두 없애지 않는 한 이 병은 완전히 근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이러스에게만 돌을 던질 수 없다. 사실 바이러스는 오랜 지구의 역사 속에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해온 중요한 존재이다. 만일 바이러스가 없었다면 지구는 탄소와 산소의 순환 시스템이 없는, 그래서 풍성한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메마른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박쥐에게도 돌을 던질 수 없다. 사실 박쥐는 거의 모든 바이러스에게 '대모'(大母)와 같은 존재다. 박쥐는 모두 137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으며 이 가운데 인수공통 바이러스는 61종이나 된다. 하지만 박쥐는 '세상 억울'하다. 지금 이 모든 사태의 원인으로 비난받고 있으니 말이다. 박쥐는 사람에게 이로운 동물이다. 박쥐는 인간에게 해로운 모기와 해충을 수없이 먹어치운다. 그런데 왜 박쥐가 가진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넘어왔을까? 혹시 '배트맨'처럼 야심한 밤중에 도심으로 날아들어 드라큘라처럼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었을까?

깊은 동굴 속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박쥐들을 세상으로 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이다. 박쥐가 인간의 세계를 침범한 게 아니라, 인간이 박쥐의 영역에 침입한 것이다. 실로 인간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흙과 물, 대기를 더럽히고 부를 과시하기 위해 '야생의 맛'을 즐기는 탐욕스러운 존재다. 이런 인간이 다른 종(種)의 서식지를 거리낌 없이 파괴하면서 종간 접촉 기회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날로 확대되는 수송 능력과 여행지는 삽시간에 병원체를 전 지구적으로 옮겼다. 결국, 치명적인 인수공통 감염병이 창궐하는 이유는 바이러스가 특별히 인간을 미워해서 표적으로 삼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너무 주제넘게 다른 생명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함민복 시인의 '소스라치다'를 읽어본다. "뱀을 볼 때마다 /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 말하는 사람들 // 사람들을 볼 때마다 / 소스라치게 놀랐을 / 뱀, 바위, 나무, 하늘 // 지상 모든 / 생명들 / 뭇 생명들." 사람은 박쥐를 보면 무섭고 놀라지만, 박쥐는 인간을 보고 얼마나 더 놀라고 무서웠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만이 아니다. '생태적 거리두기'도 필요하다. 거리두기는 '배려'다. '존중'이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고 하나님의 동료 피조물을 사랑하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이다.

지금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그저 견디고 넘어가면 다 해결되는 시간이 아니다. 지금은 매우 특별한 멈춤의 시간이다. 지금은 탐욕과 죽음의 길에서 생명과 구원의 길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시간이다.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고 변화를 요구하시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주님은 우리가 살기를 원하신다.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노라."(벧후 3:9)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오직 회개하는 우리를 고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코로나 19로 인한 지금의 이 고통의 시간은 새로운 삶과 문명의 길을 준비하는 거룩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과거처럼 아무 걱정 없이 모이는 예배를 온전히 재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교회'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이 땅의 모든 생명과 친구로 살 수 있어야 한다. 만물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세계 안에서 함께 친구로 살아야 한다. 인간의 건강이 동물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건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연대와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생태적 회심'이다. '우주적 회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고 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탐욕의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모든 동료 피조물과 '생명의 사귐'을 가지는 아름다운 새 사람을 지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사건이다.

장윤재 교수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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