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문용동 전도사는?
작성 : 2020년 06월 03일(수) 07:56 가+가-
5.18 당시 도청 지하 무기고 지키다가 계엄군 총탄에 숨져
야학 통해 형편 어려운 청년들 교육, 집창촌에 복음증거도

고 문용동 전도사가 바닷가에서 기타를 치며 찬양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문용동전도사기념사업회>

故 문용동 전도사는?



문용동 전도사는 1952년 전남 영암군 출신으로 어렸을 때의 이름은 준철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교회에 출석한 그는 광주제일교회의 교회학교 교사와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다가 1973년 호남신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 군 복무 후 복학 한 그는 3학년 재학 중 전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 파송으로 상무대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옷을 벗어주기도 하고 집에 데려와 재우기도 했으며, 때로는 집창촌에서 복음을 증거하기도 했다. 광주제일교회 성경구락부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취업을 한 이들에게 중등과정 국어 과목을 가르쳤다.

평소에도 사회구원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1980년 5월 18일 상무대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 한 명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에게 붙들려 구타 당하는 모습을 보고 말리면서 본격적인 항쟁에 참여했다.

그는 부상자 구호와 헌혈운동에 참여했고, 21일 계엄군이 물러난 뒤에는 도청 지하의 무기고를 관리했다. 26일 고인의 누나와 여동생, 동기들이 도청에서 나올 것을 권유했으나 잘못하면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끝까지 뇌관을 분리하며, 광주시민과 계엄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무기고를 지키는 것이 신학도인 주의 종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며 돌려보냈다. 그날 문 전도사는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순직했다.

2000년 호남신대는 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고, 교정에 추모비를 건립했다. 2016년 교단 제101회 총회에서 문용동 전도사를 총회 순직자로 지정해 달라는 건을 허락했으며, 이듬해인 2017년 호신대에서 순직자 지정 기념예식을 진행했다. 현재 문용동 전도사는 광주노회와 광주동노회의 헌의로 순교자 추서 심사과정에 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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