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교회에 무엇을 기대할까?
[ 논설위원칼럼 ]
작성 : 2020년 05월 26일(화) 00:00 가+가-
'코로나 19'로 인한 폭풍이 생활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워낙 기계치인 필자도 줌(Zoom) 화상회의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비대면 회의이다 보니,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냥 꾹 참게 되고 회의다운 회의가 안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코로나 19'는 국경도 없고 인종이나 세대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중요성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들의 생명을 쥐고 흔드니 말이다. 심지어 주일성수를 생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우리에게 단 두 주 만에 모든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도록 바꾸어버린 위력을 떨쳤다. 예배실로 모이지 못하는 성도들의 안타까움은 비로소 우리에게, 모여서 드리는 예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고, 다시금 예배의 정신을 돌아보게 하고, 내가 가진 신앙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아울러 목회자들에게는 교회에 대해, 목자의 역할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작은 교회들은 기술적인 시스템이 갖추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영상예배로 전환하기 어렵고, 연로하신 성도들에게 온라인으로 헌금을 받기도 어려워서 당장 재정적인 압박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은 이 땅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것도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풍성한 생명이란 무엇인가? '코로나 19'로 인해 갑자기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코로나 19'로 인해 취업의 문턱에서 막혀버린 20대 젊은이들에게, 동등한 인간의 권리와 기회보장을 요구하지만 늘 뒷전으로 밀려야 하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장애인, 노인들에게 풍성한 생명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동안 우리 교회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풍성한 생명을 충분히 공급하는 곳이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드렸던 예배가, 성경공부가, 교회프로그램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르게 전한 것이었는지, 예수님이 '나는 곧 문'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선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고 그 문으로 들어가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지, 그 도움이 충분하지 않아서 신천지와 같은 이단으로 잘못 들어서게 하는 데 책임은 없는지, 헌금을 작정함으로 구원을 보장받는다는 착각을 일으킨 적은 없는지, '코로나 19'는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우리의 교회현실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럼 이제 우리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교회는 풍성한 생명으로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이제 교회에 무엇을 기대할까? 104회기 총회 주제처럼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너진 성곽을 일으켜 세우고, 바닥으로 떨어진 교회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아서 앞으로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소비경제에서 공유경제로 넘어가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향하여 연대하고, 내 소유를 주장하기보다 내가 가진 자원을 공유하여 사용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에어비엔비나 우버 등 공유경제를 선도해왔던 기업들이 커다란 위협에 직면했지만, 반대로 '코로나 19'는 나 혼자만 잘살 수는 없는 세상임을 확실히 알려주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임을 알려주었다.

우리 여교역자들은 공유경제시대에 맞는 목회모델들을 몇 가지 상상해보았다. 우선 온라인 예배를 장비 미비로 준비하지 못하는 작은 교회들을 위해, 서울 자전거 따릉이 대여서비스처럼 지역마다 거점교회를 만들어서 그곳에 가면 영상예배를 저렴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사회의 푸드코트처럼 4~5개의 작은 교회가 사무실만 개별적으로 사용하고, 시간 간격을 두어 예배당과 식당, 프로그램은 공유하는 등 교회는 이 땅에 풍성한 생명을 전하기 위해, 신앙전수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해보면 좋겠다.

김혜숙 목사/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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