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밤길을 걸으며
[ 땅끝편지 ]
작성 : 2020년 05월 27일(수) 00:00 가+가-
브라질 편 10(완)

김철기·故 허운석 선교사 부부가 카누를 타고 인디오 마을에 복음을 전하러 가는 모습.

아마존 검은 강 신학교 전경.
작열하던 적도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고 밤이 되면 서늘해진다. 예배가 있는 날은 교회 예배를 마치고 회의를 주재하고 신학교에 들어오면 거의 11시가 된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작은 랜턴 하나를 들고 선교관을 나서서 밤길을 홀로 걷는다.

온갖 풀벌레들의 노래가 자연 교향악 자체다. 정글 어느 곳에 피어 있을 꽃내음이 코끝에 스며든다. 어제 깍아놓은 잔디가 마르며 발산하는 잔디향이 향기롭다.

중간에 간간이 서 있는 가로등 불빛에 건물들이 보인다. 건물 하나 하나를 지나면서 건물의 역사를 떠올린다. 우리 부부는 건물이 필요할 때마다 주님께 두 손을 들고 금식하고 철야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얼마 후 모 교회가 교회 생일 잔치를 하지 않고 그 비용을 건축에 써달라며 보내주기도 했다. 이렇듯 여러 사연들로 여러 선교동역자들의 헌신으로 크고 작은 여러 동의 건물이 건축되었고 신학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너는 이 땅에서 무었을 하고 왔느냐"라고 주님께서 천국에서 질문하시면 "저는 김철기, 허운석 선교사를 아마존에 파송했습니다"라고 대답하겠다는 신촌교회 오창학 원로 목사님을 비롯해 아굴라와 브라스길라 같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아마존에 직접 오셔서 더위와 독충에 몸이 상하고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워주신 동역자들도 있다. 비록 아마존에 오지는 못했으나 같은 마음으로 눈물의 중보기도와 선물과 헌금으로 필요를 채워주던 성도들의 헌신이 큰 힘이 됐다. 선교사 장녀로 태어나 이미 선교사로 봉사를 많이 한 딸과 곧 선교사로 아마존에 와서 사역을 하게 될 내 아들과 가족에게도 감사하다. 대체불가능한 존재, 고 허운석 선교사의 빈자리가 있음에도 한결같은 신뢰와 사랑으로 함께 해준 신학교 가족들과 우리 교회 성도들, 인디오 마을 형제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지금까지 우리를 돕고 협력한 선교동역자들에게 어떤 언어로 감사를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다만 주님께서 만 배나 복을 더하여 주시고, 혹여나 우리가 상을 받는다면 모두 선교 동역자들에게 돌리고 싶을 뿐이다.

허운석 선교사가 20일 금식기도를 하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신학교 채플을 지나가 본다. 십 수년간 1년에 두 번, 일주일씩 인디오 부족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뒹굴며,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었던 추억을 떠올린다. 인디오 형제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 어머니가 여기 묻혔고 아버지가 평생을 여기 살고 있다. 그러니 너희들도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한다." 얼마나 황당한 논리인가? 오랜 세월 가족으로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형제들의 논리를 들으며 아마존의 자연만큼이나 아름다운 형제들의 사랑에 감격한다.

저녁이라도 신학교 곳곳에 여러 색깔의 꽃들이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우리 내외가 꽃을 좋아해 신학교 내에 꽃을 많이 심었다. 꽃을 심으면 대개는 더위와 습도 때문에 잘 피지 못했다. 그러나 꽃을 심을 때 기뻐했던 것처럼 사역지에서 누군가를 사랑할 때 행복하고 기뻤다. 29년간의 사역 동안 어떤 형제들은 우리의 사랑을 받고 꽃을 많이 피우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었다. 그러나 더러는 우리를 이용하고 배신하고 고통을 주고 떠났다. 머지 않아 정년이 되어 은퇴하고 젊은 선교사에게 사역을 물려줄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 돌아갈 것이다. 선교지를 떠날 때, 주님께 돌아갈 때, 나는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꽃을 심을 때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가 사랑할 때 기쁨을 준 그 기억, 그 행복한 추억만 갖고 가려고 한다. 오늘도 나는 기쁘게 꽃을 심는다.

한참을 걸으면 꽃들로 둘러싸인 허 선교사가 쉬고 있는 정원에 도착한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따라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보냄을 받은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허 선교사도 다른 선교사들처럼 이 땅에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나도 이곳에 묻히기를 바란다.

홀로 밤길을 걷는 시간은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어떤 때는 낮에 있었던 일들로 인해 울부짖는다. 눈물로 회개하기도 한다. 누가 오던 간에 선교사 부부가 함께 이 길을 걸어가면 좋을 것이다. 낮에 있었던 일들을 대화를 통해 풀어 버리고 곧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풀어 낼 대상이 없음이 오히려 감사하다. 왜냐하면 나는 오직 주님께 마음을 토해내고 깊이 교제하며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나는 독신 선배인 사도 바울의 독신 예찬을 공감한다. 선교관에 다시 돌아 올 때면 오늘 하루도 주님의 선물이었음을 감사하며 또 내일을 기대한다.

김철기 목사/총회 파송 브라질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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