삯꾼 목사, 빛나는 평신도
[ 목양칼럼 ]
작성 : 2020년 05월 22일(금) 00:00 가+가-
어린 시절, 언덕배기 고향 교회 예배당이 가장 아름답게 보였다. 대리석은 고사하고 붉은 벽돌집도 본 적 없는 촌놈에게 예배당은 거룩하고 위엄 있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예배당에 오르는 비탈길은 천성에 가는 길과 같았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어보지 못했던 시절이지만 천국에 가는 길은 찬송가 가사처럼 험하고 녹록치 않은 길임을 어렴풋이 알았다.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들은 몇 번을 쉬어가며 오르던 그 예배당, 낭떠러지가 있어서 위험하기까지 한 그 예배당, 겨울이면 폭설에 종종 낙상하는 일이 발생하는 그 예배당이 지금도 영혼의 고향처럼 간직되는 이유는 단지 고향의 추억이나 어린 시절의 회상 때문만은 아니다. 그 교회를 섬긴 아름다운 사람들의 기억이 반세기가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오신 갓 결혼한 전도사가 익숙하지 않은 시골에서 고생하시던 모습, 침술에 능한 목사님이 부임해 교우들의 심신 건강을 위해 애쓰던 모습, 건축에 은사가 있는 전도사가 오게 되어 언덕배기 예배당을 동네 아래로 이전 신축하던 기억들이 새롭다.

교역자가 없을 때는 두루마기를 입은 장로님이 교역자 역할을 했다. 허리까지 차오른 눈을 치우느라 비지땀을 흘리던 집사님들, 교회 일만 생기면 바쁜 농번기에도 너나 없이 달려와 집보다 교회 일에 앞장서던 귀한 교우들의 헌신은 교회의 버팀목이었다.

창립 66주년을 맞이하는 시무하는 교회도 그런 보배로운 일꾼들의 헌신으로 세워졌다. 전쟁 폐허 위에 월남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우리 교회는 당시 각각 여덟 살, 네 살이었던 어린이가 지금은 원로장로, 선임 장로로 섬김은 자랑거리다. 27년 시무를 마치고 원로로 추대된 장로님의 교회사랑은 특심하시다. 일찍 고아가 되었지만, 예배당 건축 때는 결혼자금으로 적립해 온 통장을 도장과 함께 강대상에 모두 바친 일화는 교회의 전설적인 미담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것이 불씨가 되어 예배당을 봉헌했다. 노회장 선거에 낙선하셨을 때, 자녀 결혼, 손주 출산 등 가정이나 교회의 대소사마다 감사의 제목으로 후히 헌금하시는 장로님의 드림의 삶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큰 본이다. 장로님은 멀리 살면서도 담임목사의 목회에 본이 되고자 약한 몸으로 새벽기도회에 매일 참석했고, 퇴근시간에는 두 세 시간 걸리는 사업장에서 수요, 금요기도회까지 참석하시려고 최선을 다하셨다.

시간과 물질과 재능, 가진 모든 것들을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놓는 그 헌신 앞에, 생활비를 받고 사역하는 목사는 늘 부끄러움을 느낀다. 적어도 받은 삯만큼이라도 감당하는 종이 되기를 결심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빛나는 성도들을 눈물어린 마음으로 축복하기 위해 오늘도 새벽에 무릎을 꿇는다.

최윤철 목사/시온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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