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베풀기: 새로운 호혜적 관계의 시작
[ 주간논단 ]
작성 : 2020년 05월 20일(수) 10:00 가+가-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잠언 11장 25절 후반, 새번역).

짐멜과 굴드너 등 사회학자에 따르면 호혜성은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규범이다. 호혜성은 남이 호의를 베풀 때, 이를 갚는 것이다. 보편성이 강한 규범은 대개 인간의 내면에 각인되어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 소통과 설득에서도 호혜성의 원리가 강하게 작동한다. 무료 시식 행사를 하면 품목에 따라 매출이 2배에서 6배까지 오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마중물 효과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호혜성 규범에 따라 발생한다. 호혜성은 물질이나 서비스의 교환을 넘어 작동한다. 우리는 호감을 보이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호혜의 원칙이 호감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개인사를 공유하면서 인간관계가 깊어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호혜의 원칙이 발견된다. 한 사람이 개인사를 들려주면 상대방 또한 개인사를 나누게 되고 그럼으로써 둘은 더 친해지게 된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한 방법은 상대방의 설득을 먼저 받아주는 것이다. 심리학 연구는 상대방의 요청이나 설득을 먼저 받아준 후에 설득을 시도할 때 성공 가능성이 큼을 보여준다. 위 잠언 구절은 호혜성의 규범과 심리를 예리하게 통찰한 지혜의 말씀이다. 내가 물을 주면 상대방 또한 물을 주어 서로의 갈증은 해소될 것이다. 호혜를 통한 아름다운 문제해결이다. 하지만 목마른 자에게 물을 준 행위의 더 중요한 결과는 그로 인해 새로운 호혜적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사회과학 연구는 미시간대학의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가 한 죄수의 딜레마와 호혜성에 관한 연구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이렇다. 범행을 함께 저지른 두 혐의자가 경찰서에 잡혀 온다.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기에 두 혐의자 모두 범행을 부인하면 풀려날 수도 있다. 형사는 두 혐의자를 따로 심문하면서 조건을 제시한다. 만일 공범을 배신하고 범행을 실토하면 최소한의 처벌을 받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공범은 실토했는데 자신만 부인하면 최대한의 처벌을 받게 된다. 이때 죄수들은 동료에 협력할 것인지 배신할 것인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때 자신과 상대방 선택의 조합에 따라 처벌의 총합이 달라진다. 둘 다 잘 될 수도 있고, 한 사람만 크게 잘 될 수도 있고, 둘 다 잘 못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계산적인 죄수들은 대개 개인적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게 된다. 둘 다 계산적이어서 서로를 배신하게 되면 형사는 손쉽게 문제를 해결한다. 이런 딜레마는 정치, 경제, 기업, 인간관계 등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사회과학자들은 이 상황을 단순한 게임으로 만들어 관찰 연구했다. 두 명이 대결하는데 각자 협력 또는 비협력을 선택하고 결과에 따라 미리 정한 점수를 얻는다. 인간관계가 한 번 맺어지면 여러 번 상호작용하듯이 여러 번 대결하게 하고, 어떤 전략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연구했다. 액설로드 교수는 그 전략들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서로 대결시켰다. 1차 대회에 14개 전략이 참여하여 두 전략간 한 번에 200번씩 그리고 서로 돌아가면서 반복해서 시합했다. 최종 누적점수가 가장 높은 우승자는 액설로드 교수가 제출한 팃포탯이었다. 팃포탯은 단지 두 개의 원칙만 사용했다. 맨 처음에는 협력, 두 번째부터는 호혜, 즉, 상대방이 직전에 한 선택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었다. 첫 번째 대회의 모든 결과가 논문으로 공개되고 몇 년 뒤에 두 번째 대회가 열렸는데 이번에는 62개 전략이 참여했다. 최종 승자는 다시 팃포텟이었다.

이 결과는 많은 학자에게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다. 첫 번째 깨달음은 인간관계에서 먼저 협력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많은 전략이 맨 처음에 비협력함으로써 큰 점수를 획득했지만, 최종 결과는 처참했다. 비협력으로 시작한 전략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전략조차도 협력으로 시작한 전략 중 최하위 전략의 점수에 미치지 못했다. 비협력은 관계의 단절인 데 비해 먼저 협력하기는 새로운 상호 협력적 관계를 형성한다. 또 하나의 충격은 팃포텟은 개별 경기에서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음에도 최종적으로는 가장 큰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는 위 잠언 구절 전반부인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지고"의 내용과 일치한다. 인간관계는 스포츠와 같이 내가 이기면 상대방이 지는 제로섬이 아니고, 호혜적 관계를 통해 서로 잘 될 수 있는 비제로섬 관계이다. 비제로섬 상황에서 호혜적 관계는 누군가 먼저 선의를 베풀고, 먼저 용서하고, 먼저 귀를 기울여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목의 갈증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지만, 위로와 웃음과 같은 심리적 갈증은 홀로 해결할 수 없다. 남의 갈증을 먼저 풀어주어야 한다. 위로하면서 위로받고, 남을 웃기다가 웃는 모습 보며 따라 웃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먼저 사랑하라고 하신다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누가복음 6장 31절). 도로 받을 생각도 하지 말고 베풀라고 하신다(누가복음 6장 34절).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부유해질 것이다 (잠언 11장 25절). 먼저 베풂을 통해 두 사람의 사이에 하나님의 나라가 생성되고 확장되기 시작한다.



정성은 교수/성균관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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