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희망으로, 슬픔을 사랑으로
[ 현장칼럼 ]
작성 : 2020년 05월 12일(화) 00:00 가+가-

김희룡목사

지난 3월, 빠르게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로 인해 감염의 공포와 고립감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대구에 도착한 특별한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재난, 참사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해 앞장서 왔던 세월호 가족과 4.16연대가 대구 주민들, 특히 장애인, 이주민, 쪽방촌 주민을 위해 모금을 하고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구입하여 직접 전달한 것이다. 어려울 때 서로를 돕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덕목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이러한 사랑과 연대는 많은 이들을 슬픔과 절망을 딛고 일어선 인간의 고귀함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성찰하도록 이끌기에 충분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이후, 자식 잃은 슬픔으로 울부짖는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들의 통곡소리가 전국을 울렸다. 너무도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아이들 때문에 모든 위로를 거절하는 세월호 아버지들의 절망이 온 국민을 숙연케 했었다. 모든 국민이 그들의 통곡과 절망을 지켜보며 그 옛날 자식을 잃고 슬퍼하던 '라헬'의 통곡과 절망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들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도다."(렘 31:15) 그렇게 그들은 무슨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끝 모를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75미터 굴뚝에 올라 426일간의 생명을 건 농성을 이어가던 파인텍 노동자들의 농성장에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처참하게 죽은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추모 집회에서, 망망대해에서 실종된 스텔라데이지호 선원들의 가족들과 함께 드리는 거리 예배에서 그들을 돕는 세월호 가족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 깊은 절망과 슬픔을 딛고 이런 도움과 연대를 위한 장(場)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무참히 살해된 수많은 자녀들의 주검을 직접 수습하고, 살아남은 자녀들을 죽음의 땅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이스라엘의 '라헬'들을 향한 하나님은 위로와 회복의 약속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네 울음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자녀들이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렘 31:16)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녀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포로기는 무려 70년이나 이어졌다. 그 정도 세월이면 다시 돌아오게 될 자녀들은 이전에 헤어졌던 그들의 자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귀환하는 자녀들을 자신의 자녀로 맞이하고 돌봄으로써 상처받았던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그 사랑의 지평을 넓히는 것, 그것이 이 약속을 통해 하나님이 진정 바라셨던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난의 현장으로 달려간 세월호 가족들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자신의 자녀로 삼으며, 그 사랑의 지평을 확장해 가는 그들의 의연함을 엿보았다. 자신들의 절망을 약자들을 위한 희망으로 바꾸고, 자신들의 슬픔을 약자들에 대한 사랑과 연대로 승화시키는 세월호 가족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고통에 삼켜지지 않고 다시 희망과 사랑을 만들어 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되새겨 보는 4월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김희룡 목사/성문밖교회·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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