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 안내견 로얄이
[ 목양칼럼 ]
작성 : 2020년 05월 01일(금) 00:00 가+가-
작년 이맘 때쯤이다. 수요저녁예배에 먼저 도착한 교우들이 교회 로비에서 달달한 커피를 나누고 있었다. 삼일 전에 만났음에도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왁자지껄 폭풍 대화가 이어진다. 어느 정도 대화 주머니가 비었다 싶으면 한 두 명씩 예배당으로 오르는데, 그래도 못내 아쉬운 듯 보인다. 이때 처음 보는 한 청년이 커다란 개 한 마리와 함께 교회에 들어섰다. 언제 그랬느냐는듯 교회 로비가 조용해졌다. "예배 시간이 몇 시냐? 어디로 가야하느냐?" 그 청년의 질문은 지극히 평범했고 교역자의 안내에 따라 함께 예배를 드렸다. 모두가 "어어?"라고 외치는 하는 사이 커다란 개는 청년이 앉은 의자 밑에 엎드려 자리를 잡았고, 한 시간 내내 얌전히 기다렸다. 그날 교인들의 예배 집중도는 최고였다. 말씀을 전한 목사에게가 아니라 그 청년과 옆에서 꿈쩍하지 않고 앉아 있는 커다란 개에게 말이다. 혹시나 하는 긴장감과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상황에 대한 새로움 때문이었을까? 예배 후 폭풍 대화가 이어졌다. "그냥 하루 들렀겠지?" "목사님, 우리 교회 나온대요?" "동네에서 저 청년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것 본 것 같아!"

교인들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청년과 커다란 개는 유유히 사라졌다. 이렇게 시작된 시각장애인 청년과 안내견 로얄이의 교회 생활은 낯선 시간을 지나 이젠 익숙함으로 자리잡았다. 로얄이는 교인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도 타고, 청년이 교회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면 옆에 얌전히 앉아 있다. 예배당이 익숙해진 로얄이는 청년이 즐겨 앉는 예배자리로 청년을 인도하기도 했다. 그 사이 교인들도 안내견과 반려견의 차이를 스스로 공부했고, 로얄이를 함부로 만지거나, 먹을 것을 주지 않게 됐다. 절제된 청년과 안내견 로얄이의 행동이 교인들로 하여금 절제된 관심과 이 둘의 일상을 존중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배우는 시간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렸다. 다름을 인정하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모두가 그 시간을 잘 견뎠다. 낯설었던 그 시간을 돌아보면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상황' 속에서 부끄럽지만 내 안에 숨겨진 차별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다층적인 인간의 삶에 대한 치열한 사유함이 없을 때 '정상'이라는 말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여 숨는 나 자신을 보는 시간이었다. 좀 더 치열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보일 리가 없다. 보이지 않으니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생각의 나태함이, 드러나지 않은 차별을 행하는 최대의 가해자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평소 도서관이나 카페에 안내견과 함께 들어가는 것을 제지 당한다는 얘기를 듣고 아무 때나 교회에 와서 공부하라고 했다. 어느 날 청년은 "목사님, 저 합격했어요!"라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 국가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참 성실하게 준비하더니 결국 합격한 것이다. 청년은 예배를 드린 후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내게 다가와 제일 먼저 합격 소식을 전했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매일 지하철로 출근하는 청년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바라기는 청년과 안내견 로얄이가 삶의 길에서 웃을 일이 많았으면 한다.

김유현 목사/태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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