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밭으로 가, 그곳에서 돋아나는 어여쁨을 보자
[ 흔적을찾아서 ]
작성 : 2020년 04월 10일(금) 11:21 가+가-
15. 불침번시인 이택민 장로

배낭을 메고 일산 호수공원에서 만난 이택민 시인(우측)과 필자 고무송 목사.

"시는 나의 숙명!"이라 고백하는 이택민 장로.
산티아고 순례길(800km)을 34일만에 완주한 이택민과 아들 이새로운 군(27세).
이택민 장로의 시집들.
-[고양시청]코로나19 확진자 1명 발생. 자택 및 주변소독 완료. 확진자 동선은 '홈페이지' '카카오톡 고양시 채널' 참조바랍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3.22~4.5까지 모임, 행사, 여행 등 연기 또는 취소. 생필품 구매나 병원 방문, 출퇴근 외 외출 자제.유증상시 출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날도 카카오톡 안전안내문자엔 코로나19 확산에 대비, 시민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경고문이 이곳 저곳에서 빗발치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마다 배달되는 시인의 봄 노래가 코로나를 저만큼 물러가게 한 것일까. 비록 '사회적 거리두기' 세상이라지만, 저토록 간곡한 시인의 초대에, 내 어찌 화답치 못할 손가!

-20.03.20. <그리운 너> 자꾸 움트고 나와요/ 꾹꾹 눌러 땅 깊이 묻어놓았는데/ 삐쭉삐쭉 고개를 들어요/ 사랑한다는 말/ 너무 가슴 시려/ 묻고 또 묻었는데/ 가다가 돌아서서/ 울고 또 울었는데/ 자꾸 근질근질해져요/ 두껍던 세월/ 껍질이 얇아지며/ 두근두근거려요/ 봄인가 봐요/ 얄미운 봄인가 봐요/ 자꾸 안에서 움트고 일어나요-이택민 드림.

-20.03.21. <봄밭으로 가자> 봄밭으로 가자/ 그곳에서 돋아나는 어여쁨 보자/ 내 사랑도 돋아/ 뜰 안 가득 향기 퍼지면/ 그리움 같은 봄나물 무쳐/ 입 안 가득 품어보자// 봄밭으로 가자/따뜻함 피어나는 / 산허리/ 나뭇가지/ 이젠 설움 그치고/ 내 사랑 맞으러 가자/ 산새처럼 지저귀며/ 올/내 사랑 맞으러 가자 -이택민 드림.

그렇게 날마다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 새벽 6시가 되면 '카∼톡♪'-어김없이 '시배달'(詩配達)을 알려주는, 새벽을 깨우는 불침번시인(不寢番詩人), 그는 세상을 지키는 시인이다. 그가 누군가? "아아, 가을이 오면 첫 외손녀와 함께 회갑을 맞게되다니!" 꿈만 같은 기대에 잠을 설친다는, 이제 막 이순(耳順) 고개에 진입하고 있는 언필칭(言必稱) '젊은 시인(?)', 서울 용산구의 도원동교회(박용경 목사 시무) 장로 이택민, 바로 그가 오늘 필자가 만나는 화제(話題)의 주인공이다.

#세상을 지키는 불침번 시인

바야흐로 세상은 정체불명의 적과 싸우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으로 고귀한 인간의 생명이 파리목숨처럼 스러진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린 것도 아니건만, 중국발 코로나19는 태평양을 넘어 미국에서, 남미 페루, 유럽 이탈리아, 중동의 이란, 그리고 아프리카… 동과 서를 넘나들며 시공을 초월, 노략질하며 인간세계를 농락하고 있다. 팬데믹(pandemic)- 온누리가 공포와 비명으로 넘실댄다. 아니, 세상이 꽁꽁 얼어 붙었다. 그런 세상에, 찬란한 봄을 노래, 재난 만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시인 이택민, 그는 세상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아 글쎄, 지난 3월 어느 날 카카오톡에 띄워놓은 시인의 '어느 바이러스의 기도' 좀 들어보시라. 그는 시로써 권세 있는 자들을 꾸짖고, 민초들을 위로하며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기상천외 발칙스럽기까지 한 언사라 할, 세상을 온통 뒤집어 까발리는 이 놀라운 역발상(逆發想)이여!

-20.03.13.<어느 코로나바이러스의 기도> 나로 인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소서//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 손과 손을 맞잡는 것/ 그것이 귀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하소서// 가짜가 진짜 되고/ 진짜가 가짜처럼 취급됨이/ 우리같은 바이러스가 세상에서 극성 떨게 됨 알게 하소서// (중략)저들의 기도가/ 우리 바이러스를/ 물리쳐 달라고 기도하는 것/ 아니라// 저들의 면역력이 강해져서/ 어떤 바이러스가 와도// 스스로 이길 수 있는 힘/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나로 인해 두려움이 아니라/ 진실과 감사와 일상의 소중함을/ 진정 깨닫게 하옵소서-이택민 드림.

#시(詩)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여!

그날 우리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그 동네 호수공원에서 만났다. 개나리와 목련이 기지개를 켜는 그 무렵, 그 호숫가, 봄맞이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모습들이 눈물겹다. 정체불명의 코로나 내습을 피해서, 상춘객(賞春客)아닌, 흡사 피안(彼岸)의 안식처를 찾아나선 난민(難民)처럼 보여졌기 때문이다. 시인과 필자 역시 고향 떠난 나그네 마냥 배낭을 메고 만났다.

-어줍잖은 시로 매일 새벽마다 잠을 설치게 해드려 정말이지 송구스럽습니다.

-웬걸요. 오늘 아침 '봄밭으로 가자'는 시가 우리의 만남을 요렇게 주선해 준걸요.

소년처럼 해맑고 수줍은 미소의 이택민 시인. 세 권의 시집을 펴냈다. '별을 보며 조금 옮겨 누운 자리(2013년)', '침묵이 걸린 나무(2015년)', '겨울 숲이 그립다(2018년)'. 세인의 주목을 받아 마땅한 작품들. 그 가운데 시인의 멘토가 평을 한 두번째 시집 발문(跋文)을 기억케 된다.

-(이택민) 시인은 진지하게 세상과 자아를 관조하고, 창조섭리로 대상과 현실을 해석하며, 그만의 개성, 따뜻한 언어로 표현한다. (김상길 시인, 작은 세상의 공유를 위한 노래 '이택민의 관점과 해석과 표현', 2015)

필자와 시인의 만남은 신앙월간지 '창조문예(발행인:임만호)' 합평회(지도: 이향아)에서 였다. 그때 필자는 그 기독교 문학 잡지의 추천동인모임 '창문회'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었다.

-필자가 이택민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늦가을. 그는 창조문예 동인회 월례 합평회에 나와 수줍게시리 시집 한권을 내게 건네주었다. 두번째 시집이라 했다.(중략) 모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우연히 그와 발걸음을 함께 했다. 그는 역시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고 회장님, 저는 월례 합평회에 두어 달 못나올 것 같아요." 결국, 그는 아들과 함께 순례길에 나선다는 얘길 하고야 말았다.(빛과소금 2016년 3월호 <고무송목사가 만난 사람> 아버지와 아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pp.130~131)

이택민은 아들과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34일만에 완주했다.

-정복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말타고 순식간에 넘어갔다던 그 피레네 산맥을 우린 하찮은 부자(父子) 순례자 되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갈수록 땀에 젖어 우린 옷을 하나씩 둘씩 벗다가 나중엔 배낭을 내리지도 못한 채 둘이서 길바닥에 쓰러져 벌렁 누워버려야 했습니다. 어깨에 걸머진 배낭의 무게가 어쩌면 삶의 무게요, 인생의 숙제 아닐까… 아아, 시(詩)를 향한 타는 목마름이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지만, 그것은 시를 향한 갈급한 영혼 이택민에겐 순례길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을 뿐. 그는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사모하듯(시편 42:1), 한 모금의 시원(詩源)을 찾아 또 다시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 Tagore1861~1941)의 조국 인도 순례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방랑(放浪)의 시인(詩人)이며, 구도(求道)의 순례자(巡禮者)다.

#시(詩)를 찾아 떠난 산티아고 & 인도 순례길

-시는 내게 숙명이었다. 어느날 운명처럼 다가온 시. 그때부터 시는 삶이었고, 삶이 시였다. 무엇을 하든 시를 위함이었고, 어디를 가든 그곳에 시가 있었다. (중략) 나의 혈관 속엔 시가 흐르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서정주, 국화 옆에서, 3련)' 싯귀절처럼, 화사롭고도 분분하게 흘려 보내야 했던 순간 순간들을 많은 세월 지나서야 아쉬움으로 반추하듯, 시를 향한 나의 미안스럽고도 송구스러운 이 초라한 소명이여!

시를 찾아 홀로 인도로 떠나면서 남겨놓은 이택민의 장탄식(長歎息). 그것은 어쩌면 소명(召命)을 향한 대장정(大長征) 첫발을 내딛는 출정사(出征辭)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왜 인도 가느냐 묻는다. 나는 인도로 가는 것 아니라, 인도 쪽으로 가는 것이다. 내겐 방향만 있지 목적지는 없다. 굳이 목적지라고 얘기하자면 그곳은 광야, 낯선 미지의 땅일 뿐. (중략) 나는 서슴없이 그곳으로 향한다. 내가 밟는 땅, 그곳이 나를 반기든 그렇지 않든, 나는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나아간다. 가슴이 뛴다(2019년 3월 28일 목요일).

이택민은 인도 순례 67일 동안의 삶과 묵상을 A4용지 73페이지로 정리한 바 '인도후기'는 이렇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또 다른 연장선상에서의 인도 순례길. 나는 얘기했다. 인도로 가는 것 아니라 내면(內面) 여행이라고.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보이는 800km, 인도에서의 길은 보이지 않는 800km 순례길. 산티아고에선 34일 온전히 걸었고, 인도에선 67일 온전히 순례의 길에 있었다.

-나는 (인도에서) 시를 보았다. 시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았다. 그 샘솟는 시의자리, 더 깊어지고 넓어지길 기도한다. 그들은 묻는다. 인도에서 무얼 보고, 듣고, 느꼈느냐? 나는 내가 인도에서 듣고 느끼게 된 내면의 소리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눈에 비쳐진 거리 얘기만 했을 뿐이었다.

#시인 이택민과 다듬잇돌

필자는 시인 이택민의 시를 만나기 위한 순례의 길, 순례자의 삶에 삼가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가 구하는 시(詩)는 진리(眞理)이며, 그는 진정 구도자(求道者)이기 때문이다. 문득 필자가 존경하여 마지 않는 작가 김포천(전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의 '다듬잇돌' 주제의 글을 생각하게 된다.

-다듬잇돌은, 다듬이 방망이가 내리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듬잇감을 보자기에 싸서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다듬이 방망이로 두드린다. 그래도 다듬잇돌은 그것을 고통이나 고난으로 여기지 않는다. 방어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청결을 빚어내려는 인내요, 침묵일까. (중략) 다듬잇돌은 그냥 그대로 있다. 그런데 다듬잇돌은 제 빛을 잃지 않는다. 은은한 빛이다. 하얗거나 파란 자리에 비스듬히 청아한 빛으로 내려앉는다. 그 빛이 우리를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오게 한다. 그리고 무심(無心)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청정(淸淨)의 세계요, 사무사(思無邪)의 경지다.

그날, 필자의 부득이한 가정사 인하여 우리의 만남은 두시간으로 한정돼야 했다. 커피를 잘 볶아내는 일산카페 '커피인'에서 한잔의 커피로, 저녁식사도 거른 채 보내야 되는 필자의 마음은 무척이나 아쉽고 서운했다. 그러나 복받치는 희열로 충일, 어두운 밤길에 총총 떠나보내야 했던 불침번시인 이택민. 필자는 애오라지 감사와 간구의 기도로, 그렇게 시인을 전송할 수 있었다.

-주여, 불침번시인 이택민 인하여 감사드리오며, 그에게 갑절이나 영감을 더 하옵소서(왕하 2:9)!

<알림>3월 21일자 흔적을찾아서 '텐트메이커 사역자 이길주 목사(길목교회)가 펼친 코로나19 극복 위한 미자립교회 온라인예배 중계시스템 구축 지원사역은 1차 65, 2차 102, 3차 426, 총 593개 교회를 지원하고 마감했다는 소식. 카페교회 개척은 진행중이며, 교회 명칭과 로고를 확정. 독자 여러분의 지원, 성원, 참여, 그리고 기도에 감사하는 인사를 전해드립니다. -필자 드림

글·사진 고무송목사 /한국교회인물연구소장·전 본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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